고난주간 묵상의 글
십자가의 고난과 그 능력/ 조건상 목사
빌립보서 2:5-11
여러분은 이 마음을 품으시 오.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그는 본래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려 하시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을 취하셨으며 사람의 형상을 입으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 자기를 낮추어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높이 올리셔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어 하늘에 있는 자나 땅 위에 있는 자나 땅 아래 있는 모든 사람을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하고 고백하게 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표상입니다
주 달려 죽은 십자가를 생각해 보는 고난주간이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신앙의 표상입니다. 오래 전 저의 큰 딸 에스더가, 보스턴에서 신학공부를 할 때, 스코틀랜드에서 가까운 아이오나 (Iona)’라는 작은 섬에 수학여행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아이오나 섬은 그리 큰 섬은 아닌데, 기독교 성지로 유명한 아이오나 수도원이 있는 곳입니다. 세계 각 곳에서 성서학자들이 신부나 목사 또는 신학생 또는 수도사들이 찾아와 그곳에서 성서를 필사하면서 성서고전을 연구하고, 기도와 묵상을 하는 수도원으로 알려져 있답니다.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박해를 피해 이 섬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노인이 된 도마가 집고 왔던 지팡이를 땅에 꽂으니 싹이 났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본격적으로 이 섬이 알려진 것은 6세기 경부터 기독교 수도원이 시작하면서부터 라 합니다.
그 수도원에는 뜰에는 돌로 만든 커다란 십자가가 있고, 매일 새벽에 기도할 수 있는 작은 채플이 있답니다, 며칠간 그곳에 머물면서 에스더는 새벽에 채플에 들어가 혼자 기도를 했는데, 어느 날 새벽 채플 안에 세워 놓은 십자가, 흔히 가톨릭 성당 안에서 볼 수 있는, 양손에 못 박힌 예수님이 매달려 있는 십자가를 보다가, 저 십자에게 매달린 이가 나의 아빠였다면 내가 이렇게 묵묵히 십자가를 바라만 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고통을 당하신 예수님을 생각하게 되면서 그 때부터 울면서 얼마동안 기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들려왔답니다. 깜짝 놀라 오르간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니, 누군가가 에스더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오르간을 연주를 해 주고 있었답니다. 그날 그 오르간 소리는 마치 에스더에게 하늘에서 들려오는 기도응답처럼 들렸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은혜의 표상이고, 용서와 사랑 그리고 믿음과 구원과 소망의 표상이고 능력의 원천입니다. 고난주간은 십자가 앞에 더욱 가까이 나아가 엎드리는 기간입니다. 고난주간에 십자가를 바라볼 뿐만 아니라, 십자가 상에서 고통을 참으시면서 온 세상의 죄인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그 음성과 주님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다면, 이 고난주간이 얼마나 복된 시간일까요?
십자가의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
찬송가에 있듯이,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
공감 능력이란 말이 있습니다. 남의 고난에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은 쉽지 않습니다. 내가 아파봐야 남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습니다. 내가 고생을 해 봐야 남의 고생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난이란 경험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아픔입니다. 고난주간에 십자가를 지셨던 주님의 마음에 내가 공감할 수 있다면, 큰 은혜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난을 당해 본 사람에겐 남들이 갖지 못한 고난을 참고 이기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힘이라 기보다는 능력입니다. 힘은 측정할 수 있지만 능력은 측정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힘보다 능력이 더 큽니다. 사도 사울이,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합니다. 그것은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공동번역 로마서 5:3-4) 사도 바울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이렇게 격려합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 공통을 공감하는 능력을 가진 사도라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이 세대는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서 서로 소리를 질러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않았다”고 말한 것과 같다. 한 마디로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이 없는 세대라는 것입니다.
한국에 지체장애자들이 우리에게 지하철을 탈 수 있게 해 달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한 쪽에서는, 너희 지체장애인들이 걸리적거려 출퇴근에 방해가 된다고 질책하는 소리를 냅니다. 공감능력이 없어서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고난의 흔적이 하나님의 사랑의 흔적이 됩니다
제가 군목으로 있으면서 아주 귀한 믿음의 여단장 지휘관을 만났습니다. 육군사관학교 12기 졸업생인데, 고등학교를 평양 제1고보를 나온 후 6.25때 남한으로 피난나와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하루는 저를 자신의 공관으로 초대하여 저녁을 함께 들게 되었습니다. 식사하는 중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평양에서 고등학교 학생시절 자신은 감리교회 교인이었답니다. 6,25 사변이 터지고 전쟁터에서 허리를 관통하는 총에 맞아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보니 야전병원 응급실이었답니다. 저에게 그 상처를 보여 주었습니다. 수십년을 군대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신앙생활을 못했는데, 자신의 신상명세서에는 종교난에 늘 기독교라고 썼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제가 그 여단장님께 “이 상처를 귀히 여기십시오. 이상처는 하나님께서 여단장님을 사랑하셔서 구원해 주셨다는 흔적입니다.” 저의 이 격려를 듣고 나자 그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저의 손을 꼭 잡으면서 앞으로 신앙생활을 잘 하겠 노라 약속하였습니다. 그 여단장께서 15세나 적은 저를 목사로 존중해 주셨습니다. 그의 전쟁터에서 받은 상처가 “하나님의 사랑의 흔적”이 되어서 오히려 그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 나를 괴롭히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 노라.”
신앙생활을 하노라면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되는 일이 많이 생깁니다. 고난주간에 그 상처들을 영광의 상처로 바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약한 곳에서 강함이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간증입니다. 사도 바울이 눈에 가시와 같은 고통이 가시지 않아 기도하였는데, 주님의 음성이 ‘네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들려왔다고 합니다.
마음이 문제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마음,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격려합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졌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는 흔히 마음은 가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장이 마음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사실 감정도 이성도 마음도 심장 박동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머리속에 있습니다. 마음은 생각 속에 정신속에 담겨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예수님의 생각속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곧 예수님의 말씀이고 예수님의 말씀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정신이 곧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속에 예수님의 마음이 깃들어 있고, 예수님의 행동 속에 예수님의 마음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성경에 하늘나라가 네 속에 있다는 말씀은, 하늘나라는 네 정신 속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네 생각하는 것이 곧 자신이다” 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내 마음은 내 영혼입니다. 그래서 내 생각이나 정신이나 말이나 행동을 모두 예수님의 것으로 바꾸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생각이 바르지 못하면 마음이 바르지 못한 것입니다. 생각이 병들면 마음도 병든 것입니다.
첫 번째 아담은 이기적인 인간, 자신이 하나님같이 되어보려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아버지 하나님께 복종하시기 위해 오신, 전적으로 남을 위해 사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높이 올리셨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하고 고백하게 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마음이 문제입니다. 즉 생각과 정신, 영혼 속에 예수님이 계시도록 하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십자가 정신 속에 있습니다. 십자가를 떠나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도, 바라볼 수도 없습니다. 우리 삶 속에 십자가의 상처가 담겨 있다면 큰 영광입니다. 이 주간에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가 되신 여러분께 십자가의 고난과 십자가의 능력을 경험하시는 주간이 되시기 바라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