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시인 배미순과 함께 하는 빈 의자의 시간
2025년 11월 4일 화요일
오후 2:12
시인 배미순과 함께하는 의자에 시간 오늘이 3번째 날입니다 얼마 전 토요일에는 올해의 마지막 단풍놀이가 될지도 모르는 나들이를 갔습니다 두 시간이 채 안 걸리는 스타보드락을 향해 가면서 풋배추 국과 도시락엔 여덟 가지 반찬을 담고 따뜻한 커피와 옥수수 차도 준비했습니다 양식보다 한식을 더 좋아하는 동생 때문이었습니다 동생 가족은 잡채와 약밥 호두과자 감주 등등을 싸와 그야말로 진수 성찬이었습니다 즐겁게 밥을 먹고 자주 가던 스타브드락이 아닌 그 옆에 있는스테이트 팍을 가보자고 해서 일곱 여덟 개의 계단으로 된 층계를 내려가다가 몸이 약한 제이가 갑자기 더 이상 못 가겠다고 했습니다 별생각 없이 "그러면 차에 가서 잠시 앉아 있으면 우리가 조금만 더 걷다가 돌아올게." 하고는 층계 아래에서 제이가 안 보일 때까지 기다리다가 떠났습니다 한 십 분쯤 걸었을까요 사진을 찍고 있는데 미국인 부부가 다가오더니 제임스인가요 하고 묻더니 와이프가 층계에서 사고가 났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때부터 내려왔던 층계들을 다섯 개쯤 올라왔을 때 그녀가 서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치매를 앓고 있는 그녀가 파킹해둔 차를 쉽게 찾을 줄만 알았지 차를 찾지 못해 다시 우리를 쫓아 층계를 내려올 줄은 몰랐기에 사고를 예견하지 못했습니다 반쯤 내려오다가 남아있는 계단을 미처 보지 못하고 무릎을 내리 찍으며 나동그라졌고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내 남편이 제임스인데 코리안이고 저만큼 앞에서 걸어가고 있을 것이라고 말해 결국은 빨리 찾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가을에 풀꽃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가 허무하게 다시 돌아오며 우리의 모든 순간순간도 주님께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삼십 대에 쓴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풀꽃 이야기/ 배 미 순
오늘 밤은 풀꽃의 뒷이야기가 듣고 싶다
눈뜬 자들이 보지 못한 아름다움을 위해
가장 오래 가을의 빈 들녘을 지키던 작은 불꽃의 이야기가
몇 조각 마른 빵 속에 기다리는 그대와 나의 성근 세상살이
깊고 깊은 어둠 속 울무같은 인간살이의 와중에서
문득 그리운 이처럼 혼신으로 손 흔들며 남아 있더니
이 혹한의 겨울에 정수의 혼백만 살아남아 내 질긴 영혼의 수피를 벗기는구나
-떠나거라 떠나거라 오늘 밤 갈갈이 찢기며 울며 떠나는 네 모습 보여다오-
소리치며 내 가슴을 맴도는구나
마른 빵 몇 조각을 위해 우리는 이곳까지 달려왔는가
이승의 마지막 아침이 그러하듯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을 밟으며 떠나왔는데
아, 오늘 밤은 가을이 빈 들녘을 떠나듯 소리 없이 떠나게 해다오
죽은 풀꽃 하나가 수만리 천상의 끝에서 아물거리며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사랑에 닿는 것이 보일 때까지
그대 내면의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 새롭게 모든 것에 이를 때까지
저물녘 길가에 서서/ 배미순
저물녘 길가에 서서 저무는 가을을 봅니다
살아서 꿈꾸고 살아서 괴로워하던 것
마지막 할 말처럼 마른 입새에 숨겨두고
아직도 남아 손 흔드는 안타까운 풀꽃에계
먼 집들의 따스한 불빛은
슬프고 목마른 생애를 배우누나
바람이 가늘게 사위를 흔들면
눈물되어 한가닥 광휘되어
아, 사라지는 것들은 아름다워라
그러나 그대 이대로 사라질 수 없어
저무는 가을 저무는 것들 밝히며
이른 밤별 하나로 돋아나는 것을….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