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꽃 앞에서 내가 갑자기 죽었다
내가 갑자기 죽었다
목 맥혀 나오지 않았는데 이제 모든 게 달라졌다
거꾸로 매달려 살아도 이생이 좋았잖아
한평생 너무 많은 사랑을 받고 살았어,
죽음도 삶의 한 부분이니 담담하게 받아야지
장례식은 생략해도 좋아 너희들 편할 대로 하렴
시카고도 좋고 한국의 선산에 묻어도 좋아
그토록 살고 싶었던 그 순간들을 모두 껴안고
내가 갑자기 죽었다
관 속에 누어서도 조문 온 당신을 볼 수 있을까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죽고 싶다던 친구야
갑자기 시가 마구마구 쓰고 싶어지면 이젠 어떡해
이름 석자도 남기지 못하고
내가 갑자기 죽었다,니 말문이 막혔다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렇다 해도 이 생의 끝이라면
가을꽃 앞에서 마지막이고 싶다
(울산 광역 매일신문 12월28일,2022년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