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기리며/ 이영옥(수필가-옥톤 칼리지 교육심리학 강사)
사도 바오로는 티모테오 2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라고요.
엄마도 사도 바오로처럼 평생 달릴 길을 다 달리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희 딸 여섯을 기르고 가르치셨습니다. 울퉁불퉁한 길, 가시밭 길, 구부러진 길, 끝이 없어 보이는 길을 달리셨고, 길이 보이지 않으면 손수 길을 내서 달리셨습니다. 중간에 어떤 장애물이 나타나도 그 앞에 주저앉지 않으셨습니다. 그 장애물이 무엇이건 그걸 뛰어 넘어서 달리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사도바오로처럼 확신합니다. 이제 의로움의 화관이 엄마를 위해 마련되어 있다고요.
엄마는 삶을 사랑하셨습니다.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잘 살 때나 못 살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삶을 사랑하셨습니다.차에서나 집에서나 늘 노래를 들으셨고, 드라마를 즐겨 보셨고, 돋보기를 쓰고 신문을 꼼꼼이 챙겨 읽으셨습니다. 손주들 결혼식에서는 신나게 춤을 추셨고, 연중무휴의 그로서리 가게를 하실 때도 기회가 오면 모든 걸 놓고 여행을 떠나곤 하셨습니다.
엄마는 되로 받으면 말로 갚는 분이셨습니다. 작은 친절에도 고마워하셨고, 그 보답을 꼭 하셨습니다. 앞 집에 사는 고등학생한테 여름에는 잔디 깎는 일을, 겨울에는 눈치우는 일을 맡기셨는데 충분한 보수를 주고 일을 시키시면서도 명절에는 그 가족에게 사과박스를 선물하셨습니다. Nursing Home에 계실 때도 도움을 주는 직원들에게 어떻게라도 고마움을 표현하려고 애쓰셨습니다. 최근 3주 동안에는 드시질 못해 속삭이는 소리 밖에 못 내셨는데도 직원들에게 “Thank you very much.”라는 인사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소리 내는게 힘드실 때는 엄지척으로 표현을 하셨습니다.
엄마 사전에 ‘불가능’이라는 단어는 없었습니다. 내 한 몸으로 이것을 어떻게 견뎌 내지,라는 작은 의혹조차 하지 않으셨습니다. 소중히 쥐고 있던 모든 것이 불탄 종이처럼 손에서 바스러진 후에도 엄마는 다시 일어나 시작하셨습니다. “그래 올테면 와봐라. 너를 받아들이겠다. 다시 한 번 해보자.” 라며 삶을 부여잡으셨습니다. 엄마의 회복탄력성은 100%, 아니 그 이상이었습니다. 이런 엄마를 두고 노래한 듯한 시가 있어 엄마와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그 시를 헌정하며 작별인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검정 고무줄에는’ (김영남)
내복의 검정 고무줄을/ 잡아당겨 본 사람은 알 겁니다./ 고무줄에는 고무줄 이상이 들어 있다는 것을/ 그 이상의 무얼 끌어안은 손, 어머니가 존재한다는 것을/그것으로/ 무엇을 묶어 본 사람이면 또 알겁니다./ 어머니란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한다는 것을/ 그래야 사람도 단단히 붙들어 맬 수 있다는 것을/ 훌륭한 어머니일수록 그런 신축성을 오래오래 간직한다는 것을 그러나, 그 고무줄과 함께/ 어려운 시절을 살아 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겁니다/ 어머니란 리어카 바퀴처럼 둥근 모습으로도 존재한다는 것을/ 그 둥근 등을 굴려 우리들을 큰 세상으로 실어 낸다는 것을 그리하여 이 지상 모든 고무줄을 비교해 본 사람이면 알 겁니다./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고무줄이 나의 어머니라는 것을”
감사합니다. Mom, We love you!
늦게나마 어머님의 소천에 심심한 위로의 말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