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와 한인 우편 배달부/배미순 편집장

 

 

작년 여름에 한국 번역원 주최로  미주와 호주, 캐나다 등지의 <디아스포라> 한국 문학지 편집자들을 LA로  초청한 적이 있었다. 그때 목격한  LA는 길거리 점거 노숙자 문제는 심각한 상태였고 마트 주변이라든가 호텔 인근 등에도 가리지 않고 드러누워 있는 노숙자들로 인가 악취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길바닥도 청소를 안 한지가 오래 되어 누덕누덕한 잡때가 그 두께를 더 하고 있어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었다. 일정을 마치고 시카고로 돌아오면서 께끗한 거리가 얼마나 고마웠던지 모른다.

 

 

그런데 지난 3월 하순부터 LA 노숙자 텐트촌을 정화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얼마나 반가왔는지…. ‘거리를 께끗하게’ 만들자는 이 인사이드 세이프 프로그램은 막대한 예산이 들어 그동안 엄두를 못 내다가 드디어 실현을 하게 된 것 같았다. 한인 타운은 물론 이스트 및 웨스트 할리우드, 피코 유니언 등등에서 자원 봉사자 수십 명이 밤거리를 누비며 노숙자를 찾아  다니며 숫자를 파악하고 들을 이나 호텔 등으로 자리를 옮기도록 독려했다.대개 노숙자들은 자신이 머물던 자리에서 1-2블럭을 벗어나지 않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LA 카운티 홈리스들은 최근 7만 5천명이 이르고 있어 전국 최다 노숙자 거주 지역이란 오명을 쓰게 되었으며,샌타모니카, 베벌리힐스 시 등 LA카운티 전역 4천 스퀘어 마일에 걸려 실시되고 있다. 한인 노숙자들도 윌셔 블러바드와 버몬트 에비뉴, 올림필 블러바드 코리아 타운 등지에서 수년 째 증가 추세이고 고성과 싸움, 약물 거래, 쓰레기  투척 등으로 자신의 삶을 파괴할 분만 아니라 도시의 미관을 속속들이 망가 뜨리고 있어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였었다는 것.

 

노숙자들이 얼마간 모텔이나 호텔 등에서 생활한다고 해서 그 습관이 쉽게 고쳐지겠나 싶어 염려가 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그래도 노숙자 서비스관리국이란 곳이 있어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싶다.

 

 

세상을 하직하기 얼마전 이어령 박사는 이런 시를 쓰셨다.

 

‘내가 노숙자인 까닭’이라는 시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그 위에 천장이 있다는 걸/그것이 하루의 행복이라는 것을/알기 위해서는 노숙자로 살아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곁에 사람이 있다는 걸/그것이 하루의 보람이라는 것을/알기 위해서는 노숙자로 살아야 한다

 

노숙자는 노숙자(路宿者)가 아니라/노숙자((露宿者)인 게다/이슬을 맞으며/잠든 사람/노숙자의 눈물은 눈물이 아닌 게다/이슬인 게다

 

우리는 모두가 디아스포라가 아닌가?

 

작년 여름이 생각난다. 문학 행사 마지막날 아침부터 이상하게 셀폰이 고장 났다. 이 사람,저 사람에게 물어보며 전전긍긍하다가 겨우 점심을 먹고 잠깐의 휴식 사이, 친구랑 함께 셀폰을 고쳐 보려고 행사장 밖을 나갔다.그러나 금방 나타날 것 같았던 셀폰 가게를 못 찾고 헤매고 있는 사이, 한인 우편 배달부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우리의 얘기를 다 듣고도 확답은 못 해 주었지만, 한참을 가더니 우리가 있는 골목으로 되돌아 왔다.

 

‘생수 한 병’을 건네 준 것이었다.

“더운 날 길에서 헤매고 있으니,이 물이라도 마셨으면 한다”라면서…

몇 달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한인 배달부를 잊을 수 없다. 자기가 가진 생수 한 병을 기꺼이 내어준 그 사람은. 더렵혀져 가는 LA 거리 한 쪽뿐만이나라  우리의 탁한 마음까지도 깨끗하게 정화시켜 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