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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난은 클럽 참여자들의 우수한 창작글을 소개합니다.창작글은 배미순 편집장 meesbae@gmail.com과 imseniorweb@gmail.com으로 동시에 보내 주시면 검토 및 교정후 포스팅이 되며, 전 참여자 혹은 모든 외부 수신처로 발송이 됩니다.
2022.01.09 05:49

나비 / 송순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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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순례.jpg

 

 

창작 동화

나비 / 송순례(시인)

 

                                                       

 

오늘은 디오가 필리핀으로 떠나는 날이다. 햇빛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온 때문일까,

 

현우는 다른 날 보다 훨씬 일찍 눈이 떠졌다. 그 애는 새벽 여섯시에 간다고 했다.

 

"엄마, 오늘은 디오가 가는 날이잖아."

 

잘 알 수 없는 이상한 기분 때문에 퉁명스럽게 엄마에게 쏘아 붙였다.

 

"그래? 그럼 얼른 일어나 가서 인사하지 그래."

 

"벌써 갔을 거야. 지금 일곱 시잖아. "

 

"그래도 모르니까 다시 확인해보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현우는 창문으로 다가갔다. 창문으로 보면 정원을 지나 디오네 집 차고가 보이고 디오 엄마는 늘 차를 그 앞에 세워 두었었기 때문이다.

 

", 차가 있네. 아직 안 갔네."

 

마음이 급해진 현우는 자기가 지금 잠옷 차림이라는 것도 잊은 채 신발에 발을 집어넣고는 현관문을 열었다.

 

"잠깐만, 이것 갖고 가야지, 그리고 옷도 갈아입으시고요."

 

엄마는 선물 봉투를 전해 주었다. 어제 밤에 현우가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그 선물 봉투에는 현우가 손수 그린 카드와 평소 늘 아껴먹고 가끔씩 디오를 주던 네모난 쌀 과자 두어 개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갖고 놀던 조그만 자동차 한 개와 오불짜리 지폐 한 장도 들어 있었다. 그것은 그동안 집에서 벌은 용돈을 모은 것이었다. 저녁에 신발을 정리하거나 자기 방 청소를 할 때 마다 얼마간의 동전이 주어졌다. 동전을 모으면 그 동전을 지폐로 바꾸어 놓고 손쉽게 열 수 있는 네모난 저금통에 모아 놓곤 했었다. 한걸음으로 달려가 디오네 집 초인종을 눌렀다. 디오 엄마가 나왔다.

 

"현우구나. 이를 어쩌지, 디오는 아직 자고 있는데."

 

"그래요? 그럼 어떡하지."

 

"이러면 되겠다. 네가 집에 갔다가 나중에 학교 가기 전에 한 번 더 들려주겠니?"

 

", 그럴게요."

 

대답을 한 현우는 엄마가 물어 보라고 한 것을 기억해 내어 다시 말했다.

 

"그런데 정확히 언제 필리핀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세요?"

 

"으응, 내일 새벽이야."

 

'다행이다. 이젠 안심이야'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제야 내려다본 발에는 신발이 신겨있지 않았다. 같은 반 이었던 디오가 어제 학교에서 송별 파티를 했었고, 며칠 전 부터 이제 필리핀으로 간다는 말을 들었었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가 더 남아 있다. 학교에 갔다 오면 조금이라도 더 디오와 함께 놀 수 있다. 학교 갈 시간이 되어서 현우는 집 앞으로 나갔다. 디오에게 줄 선물 봉투를 손에 쥔 채. 그런데 어디서 날아 왔는지 갈색과 노란색과 오렌지색이 혼합된 날개 바탕에 까만 테두리를 두른 조그만 호랑나비 한 마리가 현우네 집 앞에 있는 하얀 기둥에 붙어 있었다.

 

", 나비다."

 

왜 그렇게 이슬이 많이 내렸는지 다른 날 보다도 훨씬 많이 내린 이슬에, 잔디는 흠뻑 젖어 있어서 마치 한꺼번에 눈물이라도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 잔디를 밟고 서 있는 운동화가 금방 젖고 말았다. 그러나 발이 차가운 지도 모르고 현우는 그 호랑나비를 쳐다보았다.

 

'저 나비는 디오 나비 같아.'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나비 역시 날아가지 않고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하면서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 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그 나비는 푸른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현우는 나비가 날아가 버린 그 하늘에 고개를 들고 비록 보이지는 않았지만, 거기 아직도 나비가 있는 것처럼 푸른 하늘을 계속 쳐다보았다.

 

 

 

현우가 디오를 만난 건 네 살, 프리스쿨에 다닐 때였다. 빨간 벽돌로 된 이곳 타운하우스에 한국에서 이사를 올 때가 프리스쿨에 다닐 때 이었으니까, 막 그 무렵에 디오도 건너편 집으로 이사를 온 것 같았다. 그러나 처음에 디오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몰랐다. 현우도 처음에 이사 와서는 늘 혼자 이었다. 그리고 늘 외로웠다. 형제도 없었고 집에 강아지도 없었다. 항상 목을 길게 뺀 채 밖에서 자기보다 큰 초등학생 형들이 노는 것만 거실에 난 유리창으로 내다보았다. 형들은 롤러스케이트를 탄 채 하키를 했었고, 조그만 미니 볼 대를 놓고 그 곳에 하키대로 힘차게 볼을 쳐 넣으면서 괴성들을 지르며 놀았다. 그럴 때마다 현우는 유리창에 두 손 바닥과 얼굴을 대고 영 떨어지지 않는 듯 그렇게 몇 시간이고 달라붙어 있었다.

 

'가서 함께 놀자고 말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키 큰 형들이 놀아 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랬는데 어느 날부터 그 형들이 불쌍하게 생각했는지 현우를 골키퍼로 앉혀 놓았다. 그래도 그게 얼마나 좋았던지 형들하고 논다는 그 것 하나만으로도 현우는 자신이 아주 큰 형이 다 된 듯싶었다. 형들이 흔들어 대는 하키대가 눈앞에서 서로 부딪힐 때는 꼭 머리를 내려 칠 것만 같았어도, 새까맣고 납작하게 생겨서 맞으면 몹시 아플 것 같은 하키 볼이 세차게 달려들 때도 무서웠지만 눈을 꼭 감고 참아냈다. 무섭다고 하면 그나마 형들이 놀아주지 않을 까봐, 놀이에 끼워주지 않을까봐 그게 더 두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다. 그날도 현우는 얼굴에 안전모도 쓰지 않고 무릎이나 손에 아무런 보호대도 없이 골대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날은 기어이 엄마에게 들키고야 만 날이었다.

 

"아니, 다치면 어쩌려고…"

 

엄마는 말을 채 잇지도 못하고 얼굴이 하얗게 변한 채 당장 골키퍼를 그만두게 했다.

 

"아이, 재미있는데 왜 그래"

 

마지못해 다시 집으로 들어가면서도 아쉬운 듯 계속해서 아이들을 뒤돌아보았다. 그 후로 현우는 또 다시 혼자 있어야만 했다. 그럴 때 마다 엄마는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는 몰라도

 

"아유, , 미국이라고 왔더니, , 또래 애들이 있어야지"

 

하시며 한숨을 쉬셨다. 엄마는 그래도 우리 동네는 아이들이 밖에서 나와 놀지만 다른 동네는 이것보다 더 아이들 구경을 못한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현우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는 몰랐지만 학교나 교회에서 밖에 친구들이 없어 집에 있는 날에는 허전한 마음을 달랠 수가 없었다.

 

  늘 그랬듯이 그날도 현우는 유리창에 붙어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노란 오리새끼가 걸어가 듯 현우만한 디오가 사뿐사뿐 밖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현우는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달려 나갔다.

 

", 반갑다. 너 누구니?"

 

", 디오야"

 

둘은 몇 분 만에 당장 친해져 버렸다. 열쇠도 둘이 똑같고 호리호리하게 가는 팔이며 조그만 얼굴에 검은 머리, 피부색도 같아서 언뜻 보면 같은 한국 아이들 같이 보였다. 현우는 너무 신이 났다. 마치 가족이라도 생긴 것처럼 마음이 뿌듯했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일학년이 되던 날, 처음 오리엔테이션으로 학교에 간 현우는 학교 출입문 유리창에 붙어 있는 네 개 학급 명단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벌렁거렸는지 몰랐다. 바로 미세스 머닉 선생님의 반에 '디오'라는 이름이 현우 옆에 나란히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 어떡해, 어떡해"

 

현우는 콩콩 두발을 뛰고 몸을 흔들어 대면서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저녁 먹고 잠잘 때를 빼놓고는 매일같이 학교에서 같이 있을 수 있게 되다니 꿈만 같았다.

 

 

 

  그 디오가 어느 날 초대장을 건네주었다. 생일이란다. 디오가 직접 만들고 그린 그림 옆에는

 

'가장 친한 친구 현우를 초대함'

 

이라고 카드 반쯤 차지하는 커다란 글자가 꼬불꼬불 적혀 있었다. 그런데 몇 월 며칠 날짜는 적혀 있었지만, 시간과 장소가 적혀있지 않았다. 현우는 그 카드를 엄마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디오 혼자 만든 거네. 파티를 어디서 한다는 거지? 네가 좀 더 자세히 알아보는 게 좋겠다."

 

엄마는 시큰둥하게 카드를 던져놓고는 다른 일을 보셨다. 그렇지만 현우는 막무가내로 매일 같이 엄마를 졸랐다.

 

"아이, 나 디오 생일파티에 꼭 가야한단 말이야, 보내줘"

 

"아이구, 아드님! 지가 어딘지 알아야 데려다주지요"

 

엄마는 우는 표정을 했지만, 할 수 없이 현우와 함께 어린이 선물 가게로 가서 디오에게 줄 선물을 골랐다. 바로 바쿠간 시리즈였다. 조그만 공처럼 생긴 것이 흘려지거나 던져지면 떨어지면서 '' 로봇으로 변신하는 그것은 아이들 사이에서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몰랐다. 집집마다 남자 아이들이 있는 집은 바쿠간을 구비해 놓지 않은 집이 없어보였다. 그 선물을 들고 집으로 오면서 현우는 엄마에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 디오는 내가 바쿠간 주는 줄 생각도 못 할 거야."

 

"?"

 

"내가 디오한테 말했거든 '네 생일에 바쿠간 안 준다.'라고."

 

목요일 이었던 디오 생일에 현우는 엄마와 함께 디오네 집 초인종을 눌렀다. 디오와 그의 엄마가 나왔다.

 

"아이, 오늘 생일은 맞는데요, 파티는 돌아오는 일요일인데…"

 

디오 엄마는 웃으며 말을 했다.

 

"그리고, 정말 미안한데요, 그 파티에는 필리핀 아이들만 모이기로 해서…"

 

", 그래요!"

 

현우는 몹시 서운한 맘이 들었지만 선물만 전해주고 집으로 왔다. 엄마는 현우를 달랬으나 현우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울면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일요일이 되었다. 그날도 교회를 가기위해 현우네 식구들은 부지런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 일찍 초인종이 울렸다. 디오 엄마와 함께 눈가에 얼룩이 진 디오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아이, 죄송합니다. 디오가 얼마나 보채는지,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디오 엄마는, 현우를 그 파티에 데리고 와야 한다고 디오가 울며불며 고집을 부려서, 할 수 없이 일요일 아침 이렇게 찾아왔노라고 밤사이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 그러셨군요. 이 시간이면 교회도 끝나는 시간이니까 참석할 수 있겠네요"

 

현우 엄마는 웃으며 흔쾌히 참석을 알렸다. 얼룩졌던 눈가가 환해지면서 디오 입은 금세 벌어져 웃고 있었다.

 

 

 

  그날 파티에서 현우는 얼마나 신이 났었는지 몰랐다. 식당에는 마우스 인형 복장을 입은 사람이 음악에 맞춰 흥겹게 걸어 다니면서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 어서들 오세요."

 

식탁에는 풍선과 냅킨, 접시 등이 준비되어 있었고, 식탁을 제외한 모든 곳은 게임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오리 인형들이 조르륵 줄을 맞춰 지나가면 그 오리를 주먹이 튀어나와 맞추는 기계는 그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러웠다. 모든 기계마다 덜거덕 거리며 상으로 표가 기계 밖으로 흘러 나왔다. 현우와 디오, 그리고 필리핀 친구들은 모두 신나게 먼저 게임을 했다. 그러고 나서 식탁에 디오와 친구들이 앉자 모든 직원들과 가족들이 모여들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주었다. 열 명쯤 되는 필리핀 아이들 속에서 유일하게 한국 사람인 현우는 주인공 디오 바로 옆에 앉았다.

 

"내 친구 현우를 소개할게."

 

디오는 그 곳에서 현우를 자기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소개 했다. 그 말을 듣고 현우는 온 이빨이 다 드러나도록 벌어지는 입을 한동안 다물지 못했다. 현우는 식당에서 만난 그 아이들과 마치 오래전부터 알아왔던 것처럼 서로 즐겁게 말을 하고 피자와 케이크를 먹었다. 그리고 디오 엄마는 준비해 온 선물을 거기 온 모든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식탁에서의 파티가 끝나자 아이들은 다시 게임기로 달려갔다. 모두들 게임기 속으로 빨려들 것만 같이 보였다. 얼마를 놀았을까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그동안 각 기계에서 얻은 표를 모아 계산대에서 선물로 바꾸어 돌아갔다. 현우는 디오 생일에 받은 선물을 자기 방 진열대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미세스 머닉 선생님 반 아이들은 교실 복도에서 자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현우의 교실은 학교 출입구가 있는 바로 그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출입구의 바로 맞은 편 입구는 체육관으로 주로 많은 아이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나, 커다란 학교 행사가 있을 경우 그곳을 이용하곤 했다. 현우는 디오와 함께 복도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 이 학교에서 가장 큰 누나, 형들인 오학년들이 그들을 지나 체육관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오학년 형들이 지나가면서 자기네들끼리

 

"왓 더 헬…왓 더 헥… (제기랄)."

 

이라는 말을 하면서 지나갔다. 놀랜 디오와 현우는 둘이 눈을 마주쳤다.

 

'그런 나쁜 말을 형아 들은 막 하는 구나. '

 

하고 둘은 눈으로 말을 주고받았다. 항상 호기심이 많아 모험을 즐기는 디오가 곧 그 말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왓 더 헬…왓 더 헬…"

 

아니야, 왓 더 헥이라고 그랬어”

 

현우가 반기를 들었다.

 

아니야, 왓 더 헬이야”

 

디오도 지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왓 더 헬, 왓 더 헬…”

 

그런데 바로 그때 디오를 바라보며 현우는 얼굴이 벌개져서 손을 엉거주춤 들고는 말을 못하고 있었다. 그런 현우를 디오가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 왜 그러는데?"

 

현우가 겨우 손을 올려 디오의 등 쪽을 가리키자 디오는 등을 돌리고 바라보았다. 바로 미세스 커크 교장 선생님이 굳은 얼굴로 디오를 내려다보고 서 계셨다. 교장 선생님은 디오의 이름과 담임 선생님의 이름을 묻고는 교장실로 오라는 명령을 내리고 사라지셨다. 디오는 어쩔 줄을 몰라 공연히 목덜미를 덮고 있는 옷 칼라를 씹었다. 칼라가 디오의 입에서 나온 침으로 척척하게 젖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싸운다거나 나쁜 말을 한다든지 하면 교장 선생님실로 불려가야 하는 일이 규칙이었다. 얼굴에 근심을 가득 담은 담임 선생님이 디오를 교장 선생님 실로 데려다 주려고 했을 때 디오는 현우를 바라보았다.

 

디오와 눈이 마주친 현우는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그러나 숨을 쉴 수가 없었고 한마디 말도 할 수 없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나도 함께 이야기한 사람이라고 말할 용기는 정말 없었다. 그냥 그 자리에서 서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교장실로 끌려가는 디오를 바라다 볼 뿐이었다. 그런 현우의 이마와 손에서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그리고 그날부터 디오와 현우는 점차 서먹서먹해지기 시작했다. 디오는 무엇이 섭섭했는지 현우 집에 찾아오지도 않았고, 학교에서도 말을 붙이지 않았다.

 

너 요즘 디오와 잘 안노니?

 

엄마가 이상하다 싶어 물었다.

 

, 아니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엄마에게 말하기 싫었다. 그렇게 얼마가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딩동"

 

하고 현우의집 초인종이 울렸다.

 

현우가 튀어 나갔고, 그 뒤를 엄마가 뒤따라 나갔다. 문 앞에는 디오엄마와 디오가 서 있었다. 디오엄마는 디오의 형과 누나와 함께 가족들이 다운타운에 있는 수족관을 보러 가는데 현우를 데려 가고 싶다고 했다. 현우는 디오와 서먹했지만 그래도 수족관을 보고 싶어 따라갔다.

 

수족관 건물은 거대했고, 신기한 바닷물고기들이 유리 관속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실내는 까맣게 어두웠고 물고기 있는 곳과 통로에만 불이 켜 있었다. 디오는 엄마 손을 꼭 잡고 있었고 잃어버리지 않도록 현우는 디오 형이 맡기로 했다. 현우보다 더 큰 돌고래도 있었지만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헤엄치는 조그만 열대어들은 만화영화에서 본 것처럼 말을 하고 웃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물고기에서 눈을 뗀 현우가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았을 때 거기 디오 형은 없었다.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디오네 식구를 찾았지만 모두 모르는 사람들뿐이었다. 건물 안이 캄캄한 만큼 현우마음도 캄캄하게 내려앉았다. 무서웠다. 갑자기 세상에 혼자 버려진 것 같았다.

 

엄마…”

 

현우는 울었다.

 

눈물이 나서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걸어 다니며 둘레둘레 자기 또래의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어디가 어디인지 몰랐다. 아무리 찾아봐도 디오는 없었다. 어떻게 걸어 나왔는지 현우가 입구 쪽까지 걸어 나왔다. 그런데 입구에는 경찰이 와 있었고 줄을 서서 한 사람 한 사람씩 빠져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는데 계속해서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 입구 쪽에 디오 엄마와 디오, 그 식구들이 서 있었다.

 

현우야”

 

디오와 디오 엄마, 그 식구들이 달려왔다. 현우는 그들을 보자 그만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미안해, 현우야, 아줌마가 잘못했어.

 

디오엄마는 현우를 끌어안고 사과했다. 디오는 현우를 끌어안으며 울었다. 현우와 디오는 함께 주저앉아 오래도록 울었다. 그 날 이후 디오와 현우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디오가 있어서 날마다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갔다. 한참을 놀다 보면 엄마가 밥 먹으러 들어오라는 소리도 귀찮게 느껴졌다. 아무리 재미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보물 같던 게임기도 디오가 초인종을

 

'딩동'

 

하고 누르면, 소파나 침대에 게임기가 날아가 듯 던져지는 것은 단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현우는 학교를 갔다 와서 간식을 먹고 나서는 늘 초인종 소리를 기다렸다. 그날도 어김없이 초인종이 울렸다. 그런데 문 앞에 서 있는 디오의 얼굴에는 온통 근심으로 벌겋게 되어 눈에는 곧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그렁그렁 했다. 놀란 현우는 신발을 대충 신고는 문도 제대로 닫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디오, 무슨 일이야?"

 

디오는 현우를 보자 우선 흐느껴 울기부터 시작했다.

 

"아빠가, 아빠가 쓰러지셨어."

 

필리핀에 있던 디오 아빠가 쓰러지셨단다. 무슨 병인지 디오는 모르지만 아무튼 엄마와 식구 모두가 이곳 집을 팔고 다시 필리핀으로 이사를 가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자기는 이 모든 일이 너무 무섭다고 말했다. 현우는 가슴이 '' 하고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요즘 학교에서는 나비를 키운다. 일학년을 마치는 마지막 프로젝트이다. 창문으로 들여다보면 일학년 교실 마다 기다란 그물 같은 것으로 둘러 쳐져 있는 망이 몇 개씩 있다. 그 밑에는 반 아이들의 각자 이름이 쓰여 있는 조그맣고 동그란 플라스틱 통들이 놓여 있다. 그 통 속에는 까맣거나 녹색으로 된 조그만 애벌레들이 한 마리씩 들어 있었다. 현우와 디오는 녹색 애벌레를 가졌다. 현우의 애벌레 뚜껑위에도, 디오의 애벌레 뚜껑위에도 각자 머리글자가 적혀 있었다. 현우는 학교를 가면 개인 사물함에 가방과 재킷을 벗어놓고는 제일 먼저 애벌레에게로 간다. 노랗고 습기 찬 먹이위로 기어 다니는 애벌레들이 쪼르륵 놓여 있는 가운데서도 자기 것을 찾는 것은 금방이다.

 

"잘 잤니? 더 많이 먹지 그랬어."

 

현우만이 아니다. 옷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는 시간에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아이들은 각자의 애벌레들에게로 달려가 그들을 바라보며 종알거렸다. 그러기를 몇 주. 드디어 현우 것이 고치를 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몰려들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현우의 고치를 들어 그물망 같이 만들어 놓은 곳에 붙여 놓으셨다. 그리고 며칠 사이로 애벌레가 고치를 틀 때 마다 반 아이들의 고치를 차례로 붙여 놓으셨다. 그런데 유독 디오 것은 아직 고치를 틀지 못한 채 여전히 애벌레 상태였다. 집에 와서도 현우는 나비가 궁금했다.

 

'오늘은 그 고치에서 나비가 날개를 달고 빠져 나왔을까?'

 

'디오 것은 왜 그러지, 죽은 것 같지는 않은데'

 

이런 저런 생각으로 아침이 되면 재빨리 옷을 주어 입고는 어서 학교에 가고 싶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과학책을 펼쳐 알에서 부터 애벌레를 지나 나비가 되는 사진을 보여주고, 지금 키우는 이 과정을 일지처럼 적고 그려보라고 했다. 일지의 대부분은 그림이 차지하긴 했지만 그래도 사진 밑에 나와 있는 ‘고치’ 라든지 ‘애벌레’라는 단어를 아이들은 한자 한자 적어 넣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공부를 하던 한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질러 반 아이들이 모두 그 아이를 쳐다보았다.

 

"저기, 저기…"

 

그 아이는 놀라 일어서서 손가락으로 망 안에서 날고 있는 나비를 가리키며 말도 못하고 서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일어나

 

"와아"

 

하며 나비에게로 모여들었다. 선생님도 어쩔 수 없이 그곳으로 갔다. 노랑과 오렌지색, 갈색이 섞여 있는 듯 한 날개에 까만 테두리를 박고, 날개 밑에 조그만 동그라미가 쳐져 있는 호랑나비 한마리가 천천히 날개를 움직이며 망에 붙어 있었다. 세상을 처음 본 모양이었다.

 

"아아, 내 나비다"

 

현우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나비의 모습을 마음에 심듯이 날개의 곡선을 따라가며 보았다. 나비가 날개를 움직일 때마다 아름다운 색들이 교차됐다. 선생님은 나비가 그곳에서 며칠 날아다니게 하다가 그곳이 좁다고 여길 때쯤이면 밖으로 내보내 주실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플라스틱 통에 들어 있던 애벌레들은 하나씩 고치가 되어 망에 걸려 졌다. 까만 애벌레에서는 흰색과 검정색이 체크무늬로 교차된 나비가, 현우의 나비처럼 오렌지와 갈색이 섞인 채 검정 테두리를 두른 날개를 가진 호랑나비는 녹색 애벌레에서 나왔다. 맨 마지막으로 고치가 되고 거기서 나온 디오의 나비는 현우와 같은 색깔의 나비가 되긴 했지만 왜 그런지 날지를 못한 채 바닥에만 붙어 있었다. 현우는 늘 그 디오의 나비가 안쓰러웠다.

 

어이, 디오 나비, 기운 좀 차려봐”

 

그 플라스틱이 모두 비워지고 애벌레에서 고치가 된 모든 것들이 망 안으로 들어간 얼마 후, 현우의 나비는 제일 먼저 교실 창밖으로 날아갔다.

 

나비야, 안녕!

 

조그만 나비가 커다란 창문 밖으로 날아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현우는 손을 흔들었다. 그 후에 망 안에 있던 다른 나비들이 하나 둘씩 밖의 꽃 속으로 날아갔다. 바닥에 붙어 있던 디오의 나비가 마지막으로 날아가던 날, 그 날은 디오의 마지막 학교생활이었다.

 

 

 

  이제 내일이면 디오가 필리핀으로 간다. 그날도 현우는 피아노 연습을 하는 둥 마는 둥 초조하게 고개를 돌려 초인종소리가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아까 학교에서 디오를 만나 집에서 함께 놀자고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친지 오 분도 못돼서 초인종이 울렸다. 탁구공 튀듯이 피아노에서 현우가 튕겨져 나갔다.

 

"디오!"

 

문을 연 현우는 디오 이름을 부르며 소리를 질렀다. 둘은 집주위에 잔디가 깔려 있고 조그만 나무들이 있는 언덕배기로 올라갔다. 거기서 나뭇가지를 주워 애매히 나무를

 

'툭툭'

 

소리가 나도록 쳐보기도 하면서. 그리고는 모퉁이를 돌아 집들 가운데에 있는 조그만 연못으로 갔다. 현우와 디오는 이곳을 자주 찾아오곤 했었다. 연못의 수심은 깊지 않았다. 가운데에는 분수대가 있었고 몇 줄기 물들이 하늘로 높이 솟아올랐다가는 힘없이 수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연못 주위에는 몇 가닥 갈대들과 이름 모를 들꽃들도 피어 있었다. 가끔씩 그곳에는 잠자리도 날아다녔고, 나비와 벌들이 꽃들을 찾아 분주하게 쫓아 다녔다. 현우와 디오가 다가서자 잔디에 앉아있던 토끼가 뛰어 달아나고 있었다.

 

"하하, 저 하얀 토끼 궁둥이 좀 봐, 디오야"

 

회색 털이 온 몸을 덮고 궁둥이만 동그랗게 하얀 털이 박혀 있는 조그만 토끼는 두 사람이 나타나자 먼저 귀를 쫑긋하게 세우더니 앞 다리를 세우고 눈을 이리저리 굴린 후에 이내 궁둥이를 보이면서 달아났다. 현우와 디오는 양 팔을 벌린 채 잔디에 드러누웠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들이 천천히 하늘을 걸어 다녔다.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데 어디서 인지 호랑나비 두 마리가 날아오고 있었다.

 

"! 나비다, 호랑나비야"

 

현우가 일어나 앉으며 먼저 외쳤다.

 

"두 마리야"

 

나비를 바라보며 디오가 외쳤다. 오렌지색과 갈색과 노란색이 곁들인 바로 그 호랑나비 두 마리는 연못 주위에 피어있는 조그만 풀꽃에, 두 사람 바로 앞에 날아 앉았다. 너무 가깝게 앉아서 둘은 깜짝 놀랐다. 먼저 현우가 말했다.

 

"이 나비들은 우리들이 키운 나비가 틀림없어."

 

"그래 맞아, 우리 나비야."

 

디오가 맞장구를 쳤다. 그 호랑나비들은 멀리 다른 곳으로 날아갈 줄도 모르고 조금 날다가는 또 같은 자리를 앉으며 계속 그 자리를 맴돌았다. 그리고는 두 날개를 접었다 폈다, 접었다 폈다 하면서 두 마리가 함께 현우와 디오에게 절을 하는 것이었다.

 

"어어, 저것 좀 봐"

 

"와아, 우리에게 절을 하잖아"

 

두 사람은 입을 벌리고 신기해서 계속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 중 한 마리의 나비가 풀꽃 위에 앉더니 날개 밑쪽으로 내린 기다란 다리 하나를 빼서는 이리 저리 흔드는 것이었다. 마치

 

'안녕, 잘 가!'

 

하고 인사를 하는 것처럼. 그 나비들을 바라보는 현우와 디오의 눈에는 어느새 인지 눈물방울이 고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보던 햇빛이 슬그머니 연못 위로 미끄러져 내려오더니 언제까지나 그 나비들에게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몇 해가 흘렀다. 현우는 이제 오학년 초등학교 졸업반이다. 며칠 전에도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았고 올 여름 방학만 지나면 가을부터는 꿈에도 그리던 중학생이 된다. 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앞으로 중학교에 가면 어떤 운동을 하며, 어떤 악기로 밴드부에 들어가 활동할까를 부모님과 상의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초인종이 울릴 때마다 문을 열어 주는 것은 늘 현우였다. 거의 대부분이 현우의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친구들이랬자 현우보다 어린 나이의 아이들도 다수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현우는 옛날의 자신을 생각해 늘 함께 놀아주고 있었다. 그날도 현우가 문을 열었다. 그런데 거기 현우만한 소년이 서 있었다. 약간 까무잡잡한 얼굴에 비둘기처럼 꼭 박혀있는 까만 눈을 가진 소년이.

 

!, 디오?

 

, 나 디오야, 너 현우 맞지?

 

엄마, 아빠, 디오야 디오!

 

큰 소리를 지르며 현우가 엄마와 아빠를 불렀다.

 

뭐라고?, 디오?

 

저녁을 먹고 있던 엄마와 아빠도 너무 놀라서 숟가락을 내려놓고 현관문으로 달려 나가 보았다. 거기에 정말 디오가 서 있었다. 열쇠가 큰 중학생이 될 한 소년이, 그러나 옛날 유치원 시절의 얼굴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그 디오가.

 

어머나 세상에…”

 

어떻게 이곳을 찾아 왔니?

 

현우의 엄마와 아빠는 너무 놀라고 반가와 어쩔 줄을 몰랐다.

 

한참 후 정신이 들은 현우 부모님들은 집 앞에 차를 대고 기다리고 있는 디오 엄마를 바라보고 그제야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디오는 그때 현우가 선물로 준 장난감 자동차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여러 번 전화를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었고 며칠 전 다시 미국에서 살게 되어 오자마자 현우를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현우 네가 아직도 여기에 살고 있을지가 궁금했는데…”

 

디오는 감정이 차오르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으음…”

 

현우 또한 말을 하지 못한 채 디오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디오가 가고 난후 엄마는 궁금해 물어 보았다.

 

"어떻게 디오의 얼굴을 알아보았어?"

 

엄만… 어떻게 베스트 후렌드의 얼굴을 잊어버릴 수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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