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에 대한 명상/배미순
봄비가 되고 싶다
이 세상 어딘가에 내리는 첫 봄비가.
얼마나 참았던
빗금처럼 쏟아지는 유혹인가
긴 긴 혹한의 끝
깊고 어두운 심연에서 끌어올린 정수를
지붕에, 언덕에, 무겁게 쌓인 잿빛의 눈더미 위에
골고루 뿌려 주리라.
오랜 고통의 갈구로 이뤄진 만남이기에
모든 물상은 제자리에서
순한 눈빛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리.
달콤한 유혹의 정령들
가 닿고 싶은 곳마다 가 닿아
씻기고 어루만지면
모두들 새롭게 빛날 채비를 하리.
기다림에 지친 삶의 모든 갈피마다
어찔어찔한 현기증이 일도록
이 세상 첫 봄비가 되어 흐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