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되느라 고생하고 있어요”
얼마 전 교회 동산원들과 월례모임을 가졌다. 내가 우리 동산의 운영을 맡게 된 첫날 모임이라 신경이 많이 쓰였다. 주일 예배를 마친 후 모두들 약속 장소로 떠나고 한 분만 내 차 뒤를 따라 오시기로 했다. 그 전에도 한 번 내 차를 따라 오신 적이 있어 안심이 되던 차였다. 그런데 한참을 가다 보니 그분의 차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약속 장소의 주소도 카톡으로 보냈기에 그런대로 안심을 하고 먼저 도착을 했다. 입구에서 통화를 하고 주소를 다시 일러주며 또 다른 교인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하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몇몇 분들이 도착을 했는데도 그분은 안 보였다. 새로운 식당을 알려 드리고자 장소를 정했는데 다운타운에 사시는 분이라 서버브가 낯설어서 인가 보았다. 얼마 안 있어 모임을 시작해야 하는데 난감해 서로서로가 그분하고 통화를 했으나 점점 더 낯선 곳으로 가고 있는 듯 했다. 결국 한 분이 자처를 해 좀 먼 곳의 잘 아는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러는 사이 준비한 내 성경책과 프린프 물을 담은 작은 백을 찾는데 눈에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갖고 왔는데…이게 왠 일일까?”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누군가가 “밖에 차에 한 번 가보세요.”하고 말했다. 그러나 차 안 옆 좌석에도 없어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와 가방을 찾았으나 역시 없었다.
“이게 무슨 조화인가? 모임을 인도해야 하는데…” 허둥지둥하는 마음을 속으로 다지며 다시 차로 가서 앞 뒤를 살펴봤다.
“아뿔사! 이게 왜 여기 있지?”
하얀 책 가방이 차 뒷 뚜껑 위에 얌전히 올려져 있었다. 차에서 내리던 바로 그 때, 교인 한 분을 만나 반갑게 인사 하느라 그곳에 남겨 둔 모양이었다. 그런데 또 누군가가 아기처럼
“난 벌써 배가 고파!” 하는 소리에 미리 신청한 음식 중 한 가지만 먼저 달라고 주문해 음식을 들게 했다. 그 이후에 길을 잃었던 분과 모시러 갔던 분이 서로 만나 식당 안으로 들어 오셨다. 내가 그 사이에 책가방을 못 찾았으면 얼마나 당황스런 일이 또 일어났을까? 싶어 아찔한 순간이었다.
모두들 얼마나 총명하고 빛나는 분이었던가. 이 땅에 와서도 자녀를 키워내고 살림을 하며 하루종일 일에 매달리느라 얼마나 신산한 삶을 살아냈던가. 그러나 지금은 모두들 연약하고 안타까운 모습이 있다. 걸음도 둔해지고 층계도 잘 못 내려가고 밤 운전도 겁내면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모든 분들이 70-80대여서 서로 이해하고 넘기긴 했지만, 젊은이들과 함께 였다면 우리 시니어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가에 놀랐으리라. 알 수 없는 변수들이 언제나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겨 앞으로는 매사에 더 챙기고 더 노력해야겠다고 작심했다.
그 다음 주 교회에서 다시 만난 그분은 “그 식당 주소를 잘못 준 것 같아요 1천 몇 번이 아니었어요?”라고 물었다. 예배 후 내가 갖고 있던 ‘1천 몇 번이 아닌’ 그 식당 명함을 살그머니 다시 건네 주었다.
몇 달전 친척들과 감사절 파티를 하고 난 뒤였다. 아들 집에 갔더니 “웬 가을 코트 한 개가 남아 있는데 누구건지 모르겠어 엄마! 주인이 안 나타나면 엄마가 입어야겠네”하고 실실 웃으며 코트를 건네 주었다. 그 코트를 한 겨울이 지나 봄이 오려는 즈음에 주인을 찾아 넘겨주고 난 지금, ”모두들 노인이 되느라 고생들 하고 있네” 싶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시카고 한인회가 치룬 <한인 이민 120년>을 기념한 날에도 “이런 자리에 1,2세가 함께 모여 행사를 치룬다면 얼마나 더 감격스러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나는 요만큼밖에 못 걸어왔고 요만큼밖에 이룬 게 없지만 아들들아, 며느리들아, 손자녀들아! 너희들은 더 높게 더 많이,더 보람차게 달려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