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가을을 보내며/배미순 편집장
지난 10월 중순, 그 아름다운 가을날 어디쯤에서부터 갑자기 감기 몸살이 들이 11월 초까지 맹~하게 지냈다. 어찌 그렇게 밥맛이 없는지 하루종일이 지나가도 먹고싶은 음식이 없어 애를 먹었다. 3주째 될 즈음에 어쩌다 식당에 갔지만 손가락 만한 조금 두꺼운 사각형 비닐이 국에서 나와 그나마도 음식을 먹지 못했다. 상상력이 발달한 나같은 경우엔 그런 사소한 것들이 너무 치명적이어서 두고두고 생각나, 조금 생기기 시작하던 입맛마저 없애 버리기 일쑤였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수년만에 감기가 들었던 그 며칠간 나는 되도록 적은 숫자인 2-3명에게만 어쩔 수 없이 들키고 말았다. 변해버린 전화 목소리때문이었다. 친구와 친척이 음식을 싸들고 방문하기 시작했다. 호박과 밤으로 만든 죽과 소공동 순두부, 만두와 빈대떡, 잡채와 메밀 국수,맛있는 쌀과 미역, 두부와 김, 청포묵과 마른 명태, 청포도와 햇밤, 숯불에 구운 갈비와 정관장, 햇감과 생수 등등…거의 뇌물(?) 수준이었다. 냉장고가 가득 찰 정도여서 회복기에 들어서서는 숨을 죽인 듯 지내야 했다.
햇밤 몇 알씩으로 겨우 견디며 하루하루 맥없이 지나는 데도 속으로부터 번져 나오는 조그만 내적 힘이 무한히 필요했다. 솟아나와야 할 에너지를 느끼기 위해 ‘연고 응원전’을 여러 번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가 무엇이관데 이렇게 사랑을 받고 있다니…” 하는 생각에 감격스러움이 밀려왔다. ‘추수감사절’을 지나면서는 과거에 늘 그러했듯 ‘10가지 올해 감사한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새로 지은 시니어 아파트에서 살게 된 일에서부터 좋은 차가 생긴 일을 바탕으로 ‘시카고 시니어 클럽’에 몸담기 시작한 일, 이 일들의 시작으로 하나님의 돌보심을 더 직감하게 된 일, 웹 클래스의 컴퓨터 공부며 사진반 활동 등으로 새 친구들이 생기며 생활에 활력을 받게 된 일, 두 아들들이 번갈아 엄마를 챙기며 대형 TV며 살림살이 전반을 돌봐 주는 일, 큰 며느리의 다운타운 근무 시작과 둘 째 며느리의 마카롱이 스코키 파머스 마켓에 진출한 일, 큰 손녀 모영이의 한국어 열공과 막내 손자에게 키타를 선물한 일, 문학에의 큰 진전은 없었지만 ‘미주문협’과 ‘재미시협’ ‘해외문협’ 등에서의 활동으로 이전 것은 지우며 새롭게 ‘치열하고 섬세하게’ 시창작에 매진코자 하는 일, 그토록 맡기 싫어한 교회의 직분을 우연찮게 허락하게 된 나 자신의 변화 등등 감사한 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이젠 나 자신을 한층 더 강화시켰고 새로운 날들을 맞을 준비도 됐다. 성탄절기의 옷차림과 엑세사리로 내적 에너지를 더욱 발화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전 것은 흘려 보내고 새로운 날들을 맞을 기본 준비가 끝났다. 오라, 오라. 새로운 날들이여, 내게로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