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에 첫 시집 상재한 김미미 작가/배미순 편집장
김미미 작가와의 인연은 내가 <시카고 중앙일보> 재직 시절때 부터였다. ‘여성 중앙’을 제작하던 때였던가?
철두철미하게 아내를 보살피던 원자력 컨설턴트였던 부군 찰스 님의 배려로 미미 씨는 수필을 쓰기 시작하면서 2010년 여름에 마침내 자전 에세이집 <미시간 호숫가에 핀 계수나무 꽃>을 북인 출판사에서 내놓았다. 찰스 님이 직접 찍은 많은 사진들과 함께 발간된 그 책의 출판 직전에 <미주문학>의 수필 신인상을 받고 문단에 데뷰했다. 서울대 사대 국문과 출신인 그는 대학 졸업 후 46년만에 첫 출판을 한 뒤 당시 한국 문학 평론가협회 회장이던 김종회 교수의 ‘문화 충격을 넘어서 이방인의 성취’라는 격찬을 받아냈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이마 그의 필력은 막내 딸 크리스티나(수진)에 의해 어김없이 드러났다. 수진 씨는 2005년부터 미국 ABC 유명 드라마 ‘Lost’에 합류, 세계적인 작가 겸 프로듀서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2014년에 두 번째 수필집 ‘노 맨스 랜드(No Man’s Land)’에 이어 2018년에 세 번째 수필집 ‘4월의 만남’을 펴낸 뒤 칠순을 훌쩍 넘겨버린 미미 씨는 “이제부터는 시를 써보고 언젠가 시집을 출판해 보고싶다”는 꿈을 내게 알려 주었었다. 그녀가 시를 쓰면 남편이 번역을 하고 싶어 했는데 팬데믹 등 여러 이유로 좀 늦어지다가 올해 초에 드디어 80편의 시를 내게 부쳐 온 것이었다. 그동안 딸과 가족이 있는 LA로 이사를 한 뒤여서 소식이 뜸했었지만 수진 씨의 쾌거가 있을 때마다 연락을 해주기도 했는데 연초의 일이 내게는 너무나 반가웠다. 신년 들어 만난 즐거운 일감이었기에 마지막 정정을 거치면서도 한껏 신이 났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팔순이 넘어 시인의 경지에 오른 수필 작가였기에 더더욱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시인의 망향가가 우리의 애간장을 녹이는 이유는, 그의 우리나라 사랑, 우리말 사랑, 이 나라 사람들에 대한 진한 사랑 때문일 터이다….한국에 오시면 청국장이나 순대국밥을 사드리고 싶다”고 중앙대 교수 이승하 시인은 말했다. 특히 김종회 문학 평론가는 ‘인간 세간과 통어하는 관조의 노래’라는 해설에서 “나와 당신의 자리를 채운 생각들에서 부터 기억과 그리움과 내일을 향한 꿈,생애의 근원과 꺼지지 않는 불꽃…등등에 이르기까지, 이전의 수필 세계가 그의 삶의 행적이요 자아 성철이며 노년기를 관조하는 효율적인 이정표였다면 이번 시들의 묘미는 자아와 세계의 관계를 상대 응대의 방식으로 설정하고 그 사이를 채우고 있는 하고많은 생각들을 시의 형용으로 발화한다”고 밝혔다. 특히,인생의 회억과 절절한 감상을 담은 미미 씨의 시들은 계절의 풍경과 끈기있는 생명력을 통해 세상의 온갖 아름다움을 노래함으로써 “시인의 눈은 유현하면서도 풍요롭다. 거기 세월의 경과가 있고 인생사의 경륜이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
흔히들 우리의 연수가 팔순이 되면 모든 교육은 중단되고 삶의 의미와 의욕도 연기처럼 사라지고 마는 경우가 허다히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하루하루와 매 순간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면밀히 곰씹어 보며 바깥 풍경과도 기쁘게 소통하려는 자세야말로 누구나가 본받아야 할 자세가 아닐까? 싶다.
더구나 “나의 삶은 어떤 리듬을 타고 있다고 볼 수 있기에 감정을 압축시켜 짧고 간절한 마음으로 표현해 보는 연습을 계속해 왔습니다. 또 누구나 마음을 열어 놓으면 시가 들어갈 자리는 있다는 확신이 들어 계속 조금씩 그 영역을 넓혀 가리라 믿고 도전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미미 작가의 첫 시집 <꽃은 져도 봄은 그곳에-시산맥 해외기획시선 034>의 발간을 마음 깊이 환영한다.
-파스타치오 콩
연두색 눈알을 굴리며/입을 방긋 열더니/세상에 나오는 두려움 때문인지/머뭇머뭇한다//처음 맛보는 환상적인 콩맛에/가난했던 유학생은 허겁지겁 집어 먹었다//눈여겨 보던 주인마님/비싼 콩이지만 천천히 먹으란다/입을 연 콩만 봐도 이제는/껍질 속에서 마님이 튀어나올 것 같다(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