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도서관 관장/배미순
정희 씨 남편 박용석 씨는
평생 늠름한 시카고의 CPA였다
책사랑이 넘친 그는 은퇴 후
느티나무 도서관을 만들었다
누군가는 회비를 내며 박수를 쳤고
누군가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그림으로
누군가는 수년간 자원봉사를 약속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열정도
세월 앞에서는 점점 무너져 갔다
책의 글자는 한 사람 한 사람
가물거리는 눈을 시리게 했고
사랑하던 젊은 사위를 앞세우더니
노후엔 함께 살자던 정든 친구마저
서산의 해처럼 사라진 뒤 팬데믹에
느티나무 도서관도 느닷없이 문을 닫았다
휘날리던 눈섶 까지 백발이 된 어느 날
앙상한 모습으로 목발을 짚고 나타났지만
눈물이 어려 차마 마주 볼 수도 없었다
세 딸이 모여 사는 샴페인으로 간다고 했다
책도 버리고 시카고도 버리고
사랑 하나 품고 향하는 새로운 은신처엔
백발이 되어도 버리지 않으마 다짐하신
그분의 약속이 살아있는 곳
풀뿌리 돋고 꽃들이 피어나듯
용맹스런 책사랑도 다시 피겠지요
문화회관에라도 기증되어서 계속 운영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기네요
시카고 알바니 팍 공립도서관에 한국부가 있지만 자체로서 존재하는 도서관도 좋을 듯 한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