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인 배미순과 함께하는 빈 의자의 시간
오늘은 7번째 날입니다. 과거에도 잠깐 미술을 배운 적은 있지만 이번 가을 학기에는 한미교회 수요 학교에서 박장렬 선생님에게 미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엔 크레파스 하나라도 귀히 여겼던 내가 미술이며 피아노며 돈이 드는 과외는 모두 하지 못했습니다. 그중 제일 돈이 안 드는 취미가 바로 문학이었죠. 종이 한 장과 연필 한 자루만 있으면 온갖 상상의 세계를 펼쳐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두 주만 있으면 교회 내에서 미술전시며 뜨개질과 서예 등 여러 전시회를 하기 위해 열심히 작품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내가 제일 못하는 게 첫째 손녀를 그리는 것인데 그 중에도 제일 안되는 게 소녀의 예쁜 눈이라 열 번도 넘게 고치고 있는데 아직도 그 본모습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미술 선생님은 정말 좋은 분입니다
첫 시간에는 칠판 가득 우리가 미술재료를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비 라비 등 몇 곳만 알던 내가 굿윌도 알게 되고 다른 유명 상점도 더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매주 색다른 자신의 미술 재료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크고 작은 캔버스며 이젤, 아크릴 재료와 카본 페이퍼와 지우개까지도 무엇이 좋은지 모두 나누어 주시며 알려주셨습니다. 지난 학기에 락 페인팅을 배웠을 때부터 저를 보고 멕시코의 유명 여류 화가의 기법과 많이 닮았다고 하셔서 너무 기분이 좋았는데 이번 학기에는 그때보다 좀 더 발전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넉넉함을 위하여/ 배미순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지음 받은 우리가
어제는 멕시코의 강진을 만나고
오늘은 뉴저지의 태풍을 만나
사람 목숨이 사람 목숨이 아니어도
내 한몸 끄덕없으면 등 따습고 배부릅니다
남은 생애라도
보다 넉넉하게 사는 법을 배우게
이 가을엔 조금씩만 모자라게
우리의 잔을 채우소서
따뜻한 대지가 강물에게
따뜻한 강물이 대지에게
푸른 바다가 하늘에게
푸른 하늘이 바다에게
무엇을 베푸는지 깨달을 때까지
그리하여 이 세기의 마지막 날 같은
막막한 어둠이 또 다른 어둠을 부를지라도
우리의 사랑 우리의 눈물
우리의 고통 우리의 갈망
다시 한번 나누며 살 때까지
이 가을엔 조금씩만 모자라게
우리의 잔을 채우소서
>인과율 / 배미순
황혼은 조용히
나의 대낮을 덮고
어느 먼 강가로 돌아갔나
아무도 보지 못하고
만난 적 없는
빈 산마을로 돌아갔나
칸타빌레 모데라토
모데라토 칸타빌레로
시간은 늘 가볍게 떠나가고
어린 잎사귀처럼
밤의 어둠을 흔들면서
내 얼룩진 영혼의 껍질을 벗긴다
기억하는가 그대여
잠시 잠들면 잊혀질 것들을 위해
눅눅한 연대의 이불 속에서
우리들의 신발은 얼마나 닳았으며
오래오래 목구멍에 와서 걸린
생존의 피나는 악전고투와
하루의 피로를 빛나게 하는
가족들의 둥근 웃음소리는
또 얼마나 짧았던가
가르쳐 나오
최대 공약수가 숨어있는 곳을
그리고 또한 그대 풋풋한 성하의 사랑으로
내 살과 뼈를 적시며 항상 풀빛 바다의 물결처럼
살고 싶은 까닭을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