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리 있을수록 그립다/이 창 봉 시인
12편의 시를 틈틈이 밤 늦도록 찾아서 읽었습니다.가슴 속에 잔잔하게 ‘때론 격랑의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정들을 지탱하며 좋은 감상 시간을 보냈습니다.그리고 일견 느낀 소감들을 생각나는 대로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도움이 되셨으면 저의 기쁨입니다.이 시들은 멀리 타국 땅 이민의 삶을 선택한 시선에서 삶, 죽음, 예술, 가족, 노년,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따뜻한 시선과 담백한 언어가 돋보이며, 진심 어린 체험에서 비롯된 서정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아래는 각각의 시에 대한 간략한 평과 함께, 마지막에 최우수작 한 편을 선정하여 보았습니다.기회가 되면 한국에서 시집 출판하시기를 권유해 드리고 싶습니다.
1. 수우족 인디언의 기도문을 읽으며-이 시는 영성과 인간의 겸허함에 대한 성찰과 삶의 정신(철학)이 배어 있습니다.기도문 형식을 빌린 시적 수사와 상징적 이미지(무지개 화법, 천사의 거울 등)가 풍부한 수작입니다.기존 기도문의 변용으로 신선함은 다소 제한이지만 겸허하고 정직한 자기성찰의 자세로 감동을 줍니다.
2. 화요일의 할머니-존재 의미에 대한 조용한 사유가 배어 있는 시입니다.산문시와 서간체의 경계를 활용해서 일상 언어로 진심을 표현하고 있군요.손자와의 거리감 표현 방식이 미묘하게 참신하게 다가 옵니다.무조건적인 기다림과 사랑에서 오는 절제된 애정이 마음을 울립니다.
3. 가을꽃 앞에서 내가 갑자기 죽었다-이 시는 죽음과 삶의 전환점에 대한 사유가 있습니다.선언적 반복 구조로 강한 리듬감 형성.그리고 직설과 상징이 조화를 이룹니다. ‘죽음’ 이후의 대화적 상상은 인상적이며 담담하면서도 시에 대한 집착이 뜨겁게 다가옵니다.
4. 언어의 전령사-이 시는 언어의 치유력, 공동체 감정에 대한 믿음을 느끼게 하며 점층적 구성, 내적 독백 구조.감정이 겹겹이 쌓이는 문장 흐름이 인상적입니다.배 시인님의 개성체를 읽을 수 있습니다.시 낭송을 ‘전령사’로 비유한 점이 인상적이며 예술에 대한 경건한 태도에 감동을 받습니다.
5. 극명함을 위하여-예술가의 존재론적 흔적을 좇는 작업을 하셨군요.탐색적 여정이자 회상의 서사 구조 형식이 인상적입니다.문장에 잔상이 남는 ‘야위고 핼쑥한’ 묘사 등 효과적입니다.동주라는 타인의 삶을 통해 자기 존재를 비추는 표현도 훌륭합니다.과거와 시에 대한 집요한 헌신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6. 환청-이 시는 상실과 소유, 집착의 본질에 대한 탐색 정신이 배어 있습니다.배 시인님의 정신들을 엿 볼 수 있었습니다.점진적 서술로 감정을 쌓아 올리는 구조.그리고 ‘그’의 환청을 통한 정서적 긴장감 유지.집과 책, 사람의 퇴장과 환영이 교차되며 의미 확장이 인상적입니다.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깊이 있게 다룬 시적 태도도 공감이 갑니다.
7. 다 카포, 다 카포-이 시는 시간의 불가역성과 인간 욕망의 간극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회상과 은유의 교차적 구성.그리고 악적 용어와 춤이 적절히 삶을 비유가 보이고 되돌이표 없는 삶’이라는 비유가 강렬하게 다가옵니다.수용과 체념 속에서도 미련이 느껴집니다.배 시인님 다운 시입니다.
8. 저녁 7시에서 9시 사이-이 시는무질서한 현실에 대한 무기력한 체험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열과 병치의 구성이 효과적이고 담담한 언어로 아이러니 전달하고 있습니다.일상의 잡음이 곧 철학이 되는 구조는 배울만한 표현입니다.냉소와 연민이 공존하는 초연한 시선의 태도가 울림을 줍니다.
9. 시노래 마을 소포- 공동체와 나눔의 회복력에 대한 믿음의 철학이 바탕을 이루는 시입니다.서간체 느낌의 정서적 흐름이 인상적입니다.구체적인 물품 목록이 감정을 더욱 구체화시키고 있고'소포'가 주는 감정적 파급력을 시로 승화하고 있습니다.배 시인님의 연대에 대한 신뢰와 기쁨의 표현이 정겹게 다가옵니다.
10. 초보 시인 권유하기-배 시인님의 창작의 가능성은 언제든 열려 있다는 희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대화체 중심, 반복 구조와 따뜻하고 직설적이 묘사가 훌륭합니다.시 창작 권유라는 설정 자체가 일상적이나 진심어린 동력이 됩니다.격려와 긍정의 에너지 가득하게 다가옵니다.
11. 삽시간에 구어진 마카롱처럼-배 시인님의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인생의 단면이 느껴집니다.정서의 곡선을 따라 흐르는 감각적 서정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미각적 이미지가 정서적으로 이입되고 마카롱에 감정의 퇴적을 투영한 비유가 신선하며 감정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려는 감성적 솔직한 시적태도가 인상적입니다.
12. 옛 추억- 이 시는 배 시인님의 마음 속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퇴적이라는 철학적 태도가 읽혀집니다.반복어법(‘내가 살던 동네’)으로 회상에 집중하고 있고 간결하지만 정감 있고 촉촉한 어조가 인상적이고 전형적인 회상시이나, 언어감각이 은근히 독특하게 다가 오는군요.덤덤하지만 서정의 진심을 잃지 않는 태도에도 공감이 갑니다.
전체 시에서 철학적으로 깊이 있는 시: 3, 5, 6번/형식미가 뛰어난 시: 3, 4, 7번/표현이 우수한 시: 1, 3, 11번/참신성이 돋보이는 시: 3, 7, 11번/태도에서 감동을 주는 시: 2, 4, 9, 10번으로 구별해 보았습니다.그리고 가장 균형 잡힌 우수작은 3. 가을꽃 앞에서 내가 갑자기 죽었다이라고 생각됩니다. 철학적 깊이, 리듬 있는 형식, 인상적인 표현, 참신한 전개, 절제된 태도 모두에서 뛰어나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배미순 시인님의 건강과 건필을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