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화처럼 피어나는 수필들/배미순 편집장
권희완 씨에게는 직함이 많다. 연극 배우에서부터 인테리어 디자이너, 시카고 단역 배우, 칼럼니스트, 수필가 등등이 그것이다.
양정고교 시절 1년 선배로, 훗날 탈렌트가 된 이정섭 씨와의 인연으로 연극반에 들어간 그는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거쳐 제대후부터 극단 ‘가교’에서 활동하면서 본격 연극인이 되었다. 1977년 미국 이민 후에는 생업을 위해 인테리어 디자인 학교에 진학했고 이어 1990년에는 ‘권 인테리어’를 설립해 본격적인 인테리어 디자이너 겸 사장이 되었다.
그러나 평생 가슴 속에서 용트림하는 연극 배우로서의 끈질긴 끼를 숨기지 못해1986년,’시카고 연극영화인협회’에서 공연한 ‘춘향전’에서 이도령 역을 맡게 되었다. 이후 ‘시집 가는 날’과 “LA아리랑’등에도 출연하며 동 협회 3회 회장을 역임하며 10년간 재임을 하기 까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죽기 전에 내가 가진 끼를 써 봐야지”하고 마음 먹고 시카고에서 배우 등록을 하고 오디션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일본인과 중국인 등 아시아인들과 20명 이상씩 경쟁하고 시카고 지역 배역 캐스팅이 있는 곳이면 할리웃·대학 영화, 드라마, TV·프린트 광고 등 가리지 않고 오디션도 20번 이상이나 도전하며 끈질기게 파고 들었다.
그의 글쓰기에 바람을 불어 넣은 것은 시사 주간지인 <시카고 티임스>에서 수필 연재를 하기 시작하면서 불이 붙기 시작했다. 계속 일취월장하여 드디어’해외문학’지의 수필 신인상을 받게 되었고 칠순이 넘은 나이에 수필가로서 거듭나게 되었다. 마음은 청춘이었으나 전 세계에 팬데믹이 오고 시카고의 미디어들도 힘이 들었다. 그러나 다시 도전했다. .2020년 2월 <극단 시카고>를 창설하고 단장을 맡으며1회 공연을 하기로 했으나 팬데믹으로 2022년 4월에야 창단 공연을 겨우 치뤘다. 버티던 신문사와 일간 방송국이 줄줄이 문을 닫기에 이르렀다. 겨우 정신을 차려 2023년 9월 국민성 작가의 <여자 만세 2>로 앵콜 공연을 마쳤다.
마침내, 신문 연재 4년동안 쓴 120편의 글 중에서 74편을 골라 제 1장 시카고의 봄에서 제 8장 연극 인생까지를 <좋은 땽>출판사에서 <시카고의 봄; 가제>이란 제목으로 발간하게 되었다. 이 책의 발간으로 하여 시니어들의 찬란한 귀감이 되기에 충분할 것으로 믿는다.
섬세한 묘사력과 통찰력이 뛰어난 그의 글들은 칠순이 넘어 시작한 또다른 창작생활에서 비롯되었다. 어린시절부터 범상치 않게 시작되어온 ,영특한 소년의 ‘사물 바라보기’의 습관이 만들어 낸 결과이자 열매에 다름 아니었다.
-장례는 아름답다….고인이 묻히기 전 마지막으로 뿌려지는 성수와 조문객들이 바치는 붉은 장미송이들이 관을 뒤덮고, 드디어 관이 내려지면 상주들의 흐느낌이 흘러 내리고. 내 마음 속엔 한 조각 파편같이 남아있는 순간의 정지 영상 같은 이미지가 있다…호사를 다한 꽃상여에 시신을 모시고 베옷 굴건 제복에 몸을 싼 상주들이 뒤를 따르고, 출렁이는 만장을 따라 상두꾼의 요령소리와 선소리가 뜰녘 가득히 울려 퍼지는 그 절절한 아름다움이…(떠남,보냄 중에서)
-새벽같이 소여물을 쑤어 여물통에 부어주는 외삼촌, 그 구수한 여물냄새와 배불러 흡족한 소울음 소리, 사립문 밖으로 나가 있는 초가 뒷간에서 나는 두엄 냄새, 때되면 부엌에서 나는 형언키 어려운 밥 냄새( 그 시절 밥냄새는 어찌 그리 좋았을까?), 맨드라미 잎으로 끓인 구수한 된장국 냄새, 차가운 샘물에 자박자박 썰어 띄운 묵은 오이지에 무짠지, 시골 두부졸임, 들기름에 재운 김, 희완이 왔다고 옹기 보시기 달걀찜에 알밴 굴비구이가 상에 오르고, 샛참이 되면 소당 뚜껑에 지지는 수수 부꾸미, 막걸리에 부풀려 가마솥에 찐 방석만한 술빵, 찐 감자, 찰옥수수, 어쩔까 그 그리운 냄새들…떠날 때면 새로 친 인절미에 술빵에, 옥수수 찐 것을 보자기에 꽁꽁 싸 괴나리 봇짐을 만들어 걸쳐주며, "그려 어여 가아 어여 가거라 내년에 또 와아"하며 치마자락을 들어 눈물을 훔치던 외삼촌댁, 그 훈훈함, 그 알싸하게 가슴 미어지는 느낌, 그냥 안기고 싶은 엄마같은 푸근함, 그리고 그분의 빛바랜 광목 행주치마 냄새.
이 괴괴잠잠하고 한유한 미국의 여름속에서 나는 그 독고개의 수묵화같이 안개 낀 아침과 여름소리와 냄새들을 맥맥히 그리워 한다.(여름 단상 중에서)
재미와 깨달음. 페미니즘도 그 시절에 싹 틔웠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사람과 소통하며 익혀 온 것들을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의 두뇌 속 문학의 연장 상자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시절부터 예의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온 작가는 그의 작은 온 몸을 통해 체득해 온 것들을 버마재비 같던 이복 형제들과 바깥 세상과 따뜻이 소통하며 지냈다. 난세를 거쳐 오면서 아버지는 난봉꾼이셨고 생모는 사변 통에 돌아가시고 키워 주신 어머니의 살림솜씨가 보통이 아니셨다. 감동을 주는 문체로 이어지는 그의 글은 호흡이 넉넉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몇 년 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몹시도 늙고 쇠약해 부서질듯한 어머니를 만나는 순간 복바치는 감정을 억제할 수 없어 오랫동안 그분을 껴안고 울었다. 일평생 신산하고 어려웠던 한 여인의 삶의 역정이 일시에, 포말처럼 떠올랐다가 스러지듯 산산히 부서지는 아픔으로 가슴을 저미었다.
)나의 어머니 중에서. (날이었다 찍은 종점을 세대가 겪은 처절히 한국동란을 강점기와 일제, 한세대가 집안의 내. 모셔졌다 김옥분이 김씨 경주, 어머니 기른 나를 옆에 그. 계셨다 누워 김괴득이 김씨 경주, 생모 나의 돌아가신 사변통에 묘소 옆에 아버지의 돌아가신 년전. 35나갔었다 다니러 초상에 어머니의 돌아가신 년전에18
--꽃과의 댸화에는 계산이 필요없다. 꽃은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같이 순수하다.
어느^날 이른^아침, 정원에 나가 첫꽃을 피운 도라지나 아니면 참나리나 양귀비꽃을 발견하고 느끼는 기쁨과 희열을 누가 어찌 알랴. …와이어로된 뒷담너머로 어미사슴 한 마리가 흰점이 뽀르르한 새끼 두 마리를 거느리고 먹을 것을 찾아 서성거린다. 경치는 좋은데 내 집 뜰에 들어오시느 건 사절이다. 먹을 게 좀 많은가.
꽃에서 꽃으로 나팔나팔 옮겨다니는 나비들, 윙윙거리며 겁을 주는 벌들, 호박꽃 접이나 좀 부쳐주지.우후죽순이라더니 비끝에 정원을 둘러보면 요 틈새 조 틈새 웬놈의 잡초들은 그렇게 기승을 하는지.
" 아이 모기땜에 못 나가겠네".(여름 정원 중에서)
에세이의 시조는 몽테뉴이고 창작 에세이는 참스 램에서 싹텄다고 한다. 이제금 수필 문학은 제 3의 창작 문학이 되어 있으며 두 장르가 함께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작품 창작은 물론 이론개발과 평론에도 힘을 쏟고 있으니, 시카고에서 배출한 권희완의 수필도 진면목을 보일 때가 되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