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왜 미국으로 이민을 왔나요?”/조광동(전 언론인)의 시사해설

by 편집장Youngmo posted Mar 2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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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이민을 왔나요?”

 

재미 언론인 조광동 씨의 마지막 <시사해설>

 

재미 언론인 조광동 씨가 지난 3 15 한미장로교회(담임 고훈 목사) 수요학교에서 2001년부터 시작했던 <시사해설> 시간의 마지막 강의를 했다. ”역사를 알아야 좋은 내일을 있다 취지로 강의를 펼친 이날, 그는 우리가 미국으로 이민을 왔을까?’ 생각하고 개개인이 이민의 이유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은 자기에게 입력된 사고와 신앙관 등에 사로잡혀 있으며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말한 그는 부친의 나이 40세에 분단 경계지역인 파주에서 출생했으며, 인간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봉화에서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시점에 갑자기 담임이 전근하게 되어 교육감에게 당돌하게 항의를 하러 것이 처음이었다고 했다. 그때 12월달에 20리를 걸어오면서 세상의 문제에 부딪힌 것이었다. 이후 서울로 이사와 공고에 들어갔으나 적성에는 맞았고 3 4.19 터졌다. 새우젓으로 유명했던 마포로 조선일보 신문을 배달했는데 어쩌다 50부가 배당되어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눠준 기억도 있다. 2 5.16 터지고 군사혁명 시기가 시작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고 경희대 경제학과 1학년때는 나라가 힘이 없으면 된다는 생각에 한일문제에 대해 쫓아다니기도 했다.유신에 대해 비판을 시작했고 졸업 한국일보의 신문기자가 되었다.  얼마 후 그는 이미 노조 발기인이 되었다. 

 

장기영 사주는 미국에 오기 전 인터뷰때 신문을 열심히 만들어 달라 당부를 하시며, "미국에 보내주는데 노조 발기인이 된 것은 신문사를 배신한 것이니 발기인을 탈퇴하면 어떻겠느냐? 미국 가서 더 좋은 기회가 있다고 신문사를 배신해선 안 된다"고 하셨다. "제가 미국 가기 위해 노조를 탈퇴하면 제 기회를 위해 동료와 노조를 배신하는 것입니다. 한 번 배신하면 또 배신합니다"하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그랬더니 장기영 사주는 "너 니힐리스트(허무주의자)지!"라고 소리쳤다는 것.  결국 노조를 탈퇴해서 배신하는 것을 거부하고 미국 가는 것도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장 사주는 몇 달이 지난 뒤 다시 그를 불러 "네가 신문사를 배신하는 것이 괴씸하지만 이번엔 용서하겠다. 미국에 가라"하고 결정을 내려 주셨다. 

 

 

이로써 1975년에 한국일보 시카고지사에 파견되어 미국생활이 시작되었고 79 시카고 한국일보 편집국장이 되었다. 5년후 귀국 무렵에 5.18사태가 발발했다. 5.18사태는 한국신문에서는  보도가 되었기에 시카고 한국일보 미국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사퇴를 종용받았다.

 

결국 시카고의 흑인 동네로 들어가 옷장사 7년을 하면서 민통 회장이 반정부 지지자가 되고 말았다. 1987 김대중  복권시에는 귀국비행기에 함께 타고 오기도 했다. “김대중,김영삼 씨가 같이 출마하면 노태우가 당선될 것이라며 분은 양보하라 의견을 내었다. 그즈음 한겨례 신문을 창간하면서 생애의 가장 편지 썼다. 진보 이념이 강조되었으나 1 반만에 한겨례는 폐간되었고 당시 딸이 중학생이라 아내의 권유로 도미 20년만에 시민권을 따게 되었다.

 

북한 방문기 더디 가도 사람 생각 하지요’(지리산 출판)라는 책은 27년전에 쓰여졌고 한국 좌파운동의 필독서가 되기도 했다. 방북 2번째 북한 사람들의 의식문제를 다룬 번째 더디 가도 우리 식대로 살지요 펴냈다. 무렵 북한은 미사일을 발포했고 그는 시대와 화합을 못한 시기를 계속 보내기도 했다.

 

2001 한국정부는 민주화운동 명예회복이 시작되었고 2002년에 그는 한미 TV 보도담당 부사장이 되었다. 그때 당시 가나안 교회 문제로 반대편이 시카고의 L 목사는 조광동을 위해 하나님께 축복 기도를 철회해 달라 정도의 요구도 있었다. 박근혜 탄핵시에는 박근혜를 옹호하는 글을 써서 극우파 되어 버렸고 보수냐 진보냐 권력이냐?’ 둘러싸고 양심의 판단이 분분하기도 시절이었다. 2018, 73주년 광복절에 그의 선친 조인배씨가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 애국지사 중에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한국의 동생으로부터 받았다. 이로 인해 그의 사부곡은 더욱더 애절하게 계속되었다. 인터넷으로 찾고 또 찾았던 아버지였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여기 계시다니! 11 떠난 아버지가 거기 있었습니다. 60년이 걸려서 아버지는 인터넷 영혼의 길을 통해 아들을 찾아오셨습니다눈물이 쏟아졌습니다. 60  11 소년은 아버지를 보내면서 줄을 몰랐는데 60 세월은 저를 울게 했습니다.

 

그는 현재 한인 이민사를 정리 중에 있다면서  특히 기독교인은 이민을 왔는지를 물어야 한다. 최초의 이민자는 아브라함이었듯이 하나님의 뜻과 소명을 밝히고 이민자로서 땅에 기여한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해야 된다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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