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 동부여행기 5/ 전갑현 마지막편

by adminWes posted Jan 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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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동부여행기 5/전갑현

전편에 이어...

아침을 맞았다고모부를 따라 동네를 돌아보았다.
동네의 산책길은 좋았다레크레이션을   있는 시설이 있었고 수영장과 호수도 있었다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채로 흐르고 있는 실개천의 둑길이 특히 눈에 들었다 자란 나무들이 숲이 되어 아치형의 멋을 자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나는  길을 걸으면서  상기된  좋다고 말했다문명과 자연의 조화인 인공호수와 실개천의 절묘한 결합으로  도시와 시골의 정취를 함께 느낄  있었기 때문이었다좋은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탓인지고모부는 동네를 구상할 ,  이미 있었던 나무 숲을 최대한 살리는  중점을 두고 설계한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필요에 따라 만들고 조성한 동네가 많다아니 대부분이다그때마다 그들의 작업 현장을 바라보면서 생각해보곤 하였다그들은 동네나 집을 구상하고 지을  주위와 동네의 환경 조성을 먼저 생각할 뿐아니라  거기에  중점을 두고 설계하여 집을 지은  같다  바로 그것이다공공의 환경을 먼저 생각하는 공용공간 우선주의 같은  그것이라  것이다끝을 맺고 마무리  때에도 그렇다끝날 때까지 끝나도 끝난  아니라는 세간의 말처럼주변 환경을 완전히 갖추어 놓은 비로소 집을  지었다 여기는 방식이다.그런 생각이 있어서인지  실개천의  길이 더욱 마음에 드는  같았다백년이 족히 넘어보이는 나무들이 숲이 되어 산책길의 들러리로  있었다.아치형으로 오솔길을 내주고 있는  나무들이 산책길에 운치를 한층 더해주고 있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곧바로 마운트 버넌(조지 워싱턴이 퇴임  기거  기념관)으로 향했다워싱턴 디시 쪽으로  2시간 남짓 드라이브를 해야  만큼결코 가깝지 않은 길이었다 길은 매년 겨울을 혹한으로 시달려야 하는 시카고의 그것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보였다아스팔트 도로는 물론나무들까지도 그런  같았다가는 곳마다 숲을 이룬 나무들이 풍요로운 모습으로 운전자들을 반겨주고 있었다눈부시게 아름다운 경치를 홀로 대할 때엔 오히려 쓸쓸해진다고 한다그러나 오늘은 그렇지 않을  같다고모와 고모부그리고 그녀와 이렇게 4명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군데군데 피어올라 핏빛을 발하고 있는 가을 단풍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눌  있었다모두가  알고 있어 공감할  있는 고모와 그녀의 친정 식구들에 대한 얘기가 종종 메뉴가 되어 오르기도 하였다차창밖의 경치와 차안의 얘깃거리가 절묘히 결합되어 기쁨을 주고 있어 그랬던지 2시간은 금세 지나가고차는 벌써 마운트 버넌에 도착하고 있었다

기념관은  꾸며져 있었다증축으로 새롭게 지은 듯해 보이는 부대건물들은 참신한 멋이 있었고올드 건물들은 리모델링이  듯해 고풍스러운 멋을 풍기고 있었다기념관의 내부는 짜임새 있고 구성져 보였다나는 제일 먼저 포토맥 강을 보고 싶었다 포토맥  둑에 앉아 옥수수차를 마시고 사색을 하면서 퇴임 후의 시간을 보냈다는 조지 워싱턴의 일상을 책에서  적이 있다. 강은 그가 기거했던 본관 건물 바로 뒷편에 있었다생각했던 것보다 강은 크고 넓어  배도 들어올  있을  같아 보였다나는   언덕에  채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천년의 세월이 흘러도 흐르고만 있을  강물은  앞에서도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재화도 명예도 권세도달빛을 가리우고 지나가는  조각 구름처럼 흘러가고 만다는 메시지를 주면서 흐르고 있었다퇴임 운명할  때까지 2년여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옥수수차를 식혀 마시면서 무슨 생각으로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나도 인생무상(人生無常) 의미가 담긴 사색을 했다.

본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증축하여  넓고 곱게 꾸며진 그의 방과 거실까지를 돌아보았고침실도 물론 둘러보았다그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어  침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다소 상기되었다운명을 앞두고 내놓은 유언장의  부분이 떠올려졌던 탓이다독립전쟁 전쟁터에서부터 수발을 들어온 흑인 비서를 자신의 사후즉시 자유인이   있도록 풀어주라는 것과  마운트 버넌에서 종사해오고 있는 3백여 명의 노예들은 부인 마사의 사후모두 풀어주도록 하라는 유언장이 바로 그것이다재임시에도 노예 해방을 주창하는 정치인들이 있었으나 그는 그같은 의견을 외면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남부의 정치인이나 그들을 지지하고 있는 세력들이 노예제 폐지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그로 인해 국론이나 국가가 분열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문제를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것이었다그러나 그의 진정한 마음은  같은 유언장의 내용과 같았던 것으로 이해할  있다는 것이다그때문에 그가 떠난 , 74년만에 대통령에 올라 노예제 존폐 문제로 발발한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아브라함 링컨이  손엔 성경그리고  다른 손엔 조지 워싱턴의 자서전을 들고 있었다고 전해지는  모른다노예제 존폐 문제와  쪽으로 갈라지고 있는 나라의 운명을 놓고 고심하면서 읽었던  권의 책이 바로 그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기념관을 돌아보면서 강력한 연방정부를 주장했던 알렉산더 해밀턴과 주정부에   권한을 부여하자는 자유주의자 토마스 제퍼슨이 논쟁을 벌이고 있는 장면이 만화로 그려져 있음을 보았다 장면에서 그는 초대 재무부장관이었던 해밀턴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이는 해밀턴이 독립전쟁 당시 자신의 참모였기 때문에 그랬던  아니라 연방정부에 의해 민주주의 국가가 지켜지고 지속되어져야 한다는 사상과 철학이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는 것이었다이같이 민주주의와 연방국가를 사랑했던 탓으로 그는 임기가 끝날 모든 사람들이 종신 대통령으로  자리를 지켜줄 것을 간청하였고심지어는 왕으로서 나라를 영원히 통치해 달라는 간청까지 있었으나  모든 청을 물리치고 자연인이 되어 마운트 버논의 농장과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두번의 임기가 헌법으로 법령화 되어있지 않았지만 그의 그같은 아름다운 민주주의와 나라 사랑의 결단으로 대통령직 중임제는 묵시적인 전통이 되어 32 루즈벨트 대통령 때까지 이어져 왔다노예제 존폐 문제와 연방주의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고심이 그토록 깊었기 때문에 퇴임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세계인들이 존경의 눈으로 바라볼  있도록  모습을 아름답게 남기고 떠나갔는 모른다요약된 그같은 글을 보면서 국민 주권주의로서 민주주의가 지니고 있는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를 숙고하게 하는 대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관  쪽에는 노예들이 살았던 집들도 그대로 관리되어지고 있었다그들이 일하면서 사용하였던 도구들도 그대로 있어서   있었다특히 눈에 들었던  배틀이었다  어렸을 적에  적이 있는 우리 동네의 배틀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같은 베틀에 앉아 계셨던 어머니의 모습을  적도 있었던 터라 가신 어머니를 잠시 떠올려 보기도 하였다.    
이틀을  체류하면서 우리는 제임스타운과 윌리엄스 버그도 돌아보았다.북아메리카 최초의 시민지로서 제임스타운은 스패니시의 공격을 방어하고 강과 바다의 인근으로 배를 정박할  있는 최적의 요새라는 판단 하에 설립되어졌다는 타운답게 높은 울타리의 방어막과 화포장치그리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형의 지향을 하고 있었다수전 콘스탄트 호와 갓스피드 그리고 디스커버리 , 3척의 배에 나누어 승선한 144명의 그들이 1607 4 버지니아 체서피크 만에 도착하여 식민지를 개척한 최초의 거주자들이었다고 가이드는 설명해주었다당시 국왕이었던 제임스 1세의 이름을  제임스 타운으로 명명했다 한다그는  제임스 타운은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 정부에 의해 세워진 타운이 아니고이윤추구를 위해 설립된 버지니아 컴패니에 의해 형성된 타운이라는 것이었다그때문에  144 중에는 오직 굶주림을 극복하기 위함이라든가 보안관을 피하기 위해 도망자처럼 숨어든 사람들그리고 귀족 계층의 모험가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그러던 컴패니(후엔 버지니아 컴패니)에서 무작위로 승선할 사람들을 선정해 출발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최초 식민지로서  제임스타운의 초기 삶은 가혹했다는 것이다그들은 원주민 공격으로부터 안전한 지역이라 예상하고그곳을 선정하여 정착했으나 지형이 낮고 습한 데다 주변에 숲이 우거져 있고막강한 인디언 지역과도 맞닿아 있어 재앙 수준의 위험이 노출된 곳이었다그래서 각종 질병과 식량 부족에 의해 겨울이면 잔인한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면서 혹독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1609 겨울그들의 수는 220명이었지만이듬해 봄에는 60명밖에 남지 않았다 한다그후제임스 타운을 발전시키기 위해 버지니아 컴패니는 많은 폴란드인과 네델란드 인들을 데리고 왔고, 1619년에는 문서에 등록된 최초의 흑인 노예들이  제임스 타운으로 끌려왔었다.그후 타운이 점점 확장되어 1699년까지 식민지 수도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당시 사용했던 화포와 다른 무기들이 있었고 무기들을 만들기 위해 쇠를 다듬는 대장간도 있었다당시의 복장을  채로 대장간에서  당시를 재현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있었고그들을 보면서 나는 당시 역사의 현장을 어렴푸시나마 상상해볼  있었다거기에 그들이 타고   척의 배도 정박해 있었다.  안의 침대는 너무 작고 협소하였다여기에서 어떻게 잠을 자고 생활하면서 장기간을 항해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협소한 침대와 부엌뿐인 그들의 작은 집들도 들여다 보았다당시에도 살림살이의 차등이 있었던지 크고 작음으로 나누어져 있었다.삶의 흔적들에 그들의 고난과 설움이 묻어있는 것을 느끼면서 다음 행선지인  윌리암스 버그로 이동하였다.

윌리암스 버그는 버지니아주의 독립된 하나의 시티로서 제임스타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시티는 제임스강과 요크  사이에 있었고, 1632년에 형성된 타운으로서 1699년부터 1780년까지 버지니아주 식민지 수도였다.그곳은 독립전쟁 당시 정치적 중심지로서  전쟁시기의 핵심 사안들이 처리된 곳이기도 하다총독과 같았던 거버너의 집무실과 관사도 물론 그곳에 있었다.  재건축이나 리마델링으로 새로워진 면도 있겠지만아직도 거버너의 집무실이 있는 본관 건물은 위엄이 느껴올만큼 엄중한 분위기가 드리워져 있었다외부도 그렇지만 내부는 더욱 그랬다비서실 옆에는 손님대기실이 있었다거버너와의 면담을 위해  인사들이 비서를 통해 만나야 했기 때문에 비서실 옆에 손님대기실이 있었을 것이다.  집무실 본관  도로변에는 다양한 상점들로 형성된 50 채의 상가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2-3층으로  건물에는 숙소이발소양복-양장점바느질집 등이 있었다거버너와의 면담을 위해서  영내 인사들과 무역 교역국의 외교사절단들에게 필요한 편의점이고 숙소였다 상점들  특히 눈에  곳이 있었다활자와 활판그리고 인쇄기와 등사기 등이 있는 인쇄소였다물론 등기소도 있었다정부가 필요한 서류나 거버너에게 제출할 문서들을 인쇄하고공중하기 위해 필요한 곳들이었다.

거버너의 지무실과 공관의 주변을 돌아보면서 독립전쟁 발발과 함께 일어났던 화약Gunpower) 사건을 생각해보았다메사추세츠 렉싱턴과 콩코드에서 최초 전투가 벌어졌을 마지막 로열 거버너였던  모어는  청사에 보관돼 있었던 화약과 탄약을 배에 싣기 위해 제임스강으로 운반하고 있었고 행위는 주민들에 의해 발각되었다 화약을 식민지의 민병대가 소유하고 사용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민병대 사령관 페트릭 헨리에게  소식은  알려지게 되었고리더인 페트릭 헨리가  사건을 마무리한 민병대 편으로 귀속시키게  사건이다로열 거버너로서 영국편에  있었던  모어는 민병대의 리더 페트릭 헨리에 의해 제압당하여 신변에 위기를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독립전쟁 당시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싸운 민병대에게 힘을 보탠 태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제임스 타운과 윌리엄스 버그를 떠난 한참이 지나자 고모의 전화가 걸려왔다오이장아찌를 빠뜨리고 갔다는 것이었다순간 그냥 갈까 하다가  장아찌보다 주시려는 고모의 마음을 생각하고 차를 돌렸다고모는   모퉁이에  있었다. 장아찌를 받아들고 다시 차를 돌렸다고모는 우리의 뒷면을 바라보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있는 모습을 보며 순간 가슴이 찡했다눈물이 흘렀다차를  수가 없었다그래서 우리는 파킹장에 잠시 차를 세웠다그리고 각자 얼굴을 정리한 다시 차를 몰았다우리는 내쳐 달렸다 참을 달리자 자동차는 내가 좋아하는 64 국도에 들어섰다나는 운전대를 그녀에게 넘겼다 국도 주변의 경치를 보기 위함이었고그곳은  건국의 아버지   분으로서 독립선언서를 초안했고, 3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 생가 주변의 샬러츠빌 시티를 바이패스하고 있는 64 국도변이었다 64 국도를 타고 애팔레치아 산맥을 넘어 웨스트 버지니아로 진입해 들어가는  산맥의 경치 또한 좋아했던 터라 그곳들을 제대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보아도  생가가 있는 샬러츠빌 시티의 국도변은 아름다웠다단풍이 없는  나무들을 보면서 나는 침엽수 종류의 사철 푸른 나무가 아닌가 생각해보았다하늘과 맞닿은 것처럼 바라보이는   나무들은 이기고 돌아온 장수들이 개선문을 통과할 때처럼 우리를 맞아 환영해주고 있었다기분이 좋았다이긴  같다는 생각이 가슴을 채웠다 편을 빼곡히 채우고 서있는  침엽수를 다시 보자니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고 천국에 이르는 선한 마음을 맞아주는 천사들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그같은 마음으로 좋다며 연신 감탄을 하자 그녀는 "당신은 좋겠네라면서 비아냥 섞인 말을 하는 듯했다그러나 내심으로는 일부러라도 보러 가고 싶어하는 마음을 알고 있어 하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그후 참을 달리자  애팔래치아 산맥을 가르고 오르는 64 국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만경을 보는 순간 고국의 강원도 인제를 지나고 오르는 한계령의 정상에서 외설악의 전경을 내려다보는 느낌이었다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멀리 바라보이는  가을산은 사철 푸른 수목인 듯한 나무들이 푸른 색깔 그대로인  단풍 속에 군데군데 섞여 있었다.아직 떠나지 못한 여름의 푸르름이 찾아든 가을 풍경과 조화를 절묘히 이룬 창연한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신이 내린 예술이요 비경에 다름 아니었다햇빛을 정면으로 받은 탓으로  빛과 어우러지고 있는 단풍숲은 깊어가는 가을의 채색이 되어 만추가경을 뿜어내고 있는  같았다그것은 가경이었다 정상의 능선에서 뻗어내려 접혀진 겹산 사이의 그늘에 숨어든 늦가을의 만경은  다른 가을산이 반추한 빛을 받아 은은하면서도 은밀한 모습을  채로 자태를 드러내 보이고 있었고은밀스럽게 다가오는  채색의 비경은 아름다운 영혼의 숨결인 나의 시선을 매료했다.숨결까지 고른   산맥의 비경을 바라보지 않을  없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그리고 기도했다기도라기보다 어쩌면  가을산의 매력에 빠져든 탓이라 함이 옳은 말일  모른다아름다운  만추가경에 취할  있는 마음에  산맥이 있음에도 감사했다눈을 감은 채로였다그런데 바로 그때그녀는 " 보고 뭐하는 거야?" 라는 말과 함께 나를 흔들어 댔다나는 "당신이 있어 좋다고 기도했지라고 말해줬다그러자   그녀는  "웃기지  손에 장을 지진다라고 어깃장 섞인 말을 쏟아내면서 지지않고 대들었다가벼운 언쟁일지언정 지지 않으려는 속성이 그녀에게 있다.부부간의 언쟁이나 다툼에는승자도 패자도 없다승자를 가려내려는 끈질긴 다툼은 결국    다툼이나 싸움을 불러오고 자칫 파경까지 불러오지 않는가.

그후한참을 달리자 어두움이 내렸고  켄터키 칼라스톤에 도착했다예약을 해놓지 않았던 터라 찾기 좋고 만만한 할리데이 인을 찾아 들었다다행히 호텔에는  방이 있었다체크인을  다음 나는 포도주  병을 주문했다룸으로 들어와 짐을  시내도 돌아볼 저녁은 나가서 하기로 하였다식사를 마치고 나니 저녁 7시가 넘어서고 있었다외지에 오래 있는  좋지 않을 성싶어 호텔로 돌아왔다몸을 씻은 우리는 포도주 축제를 하였다있었던 저간의 얘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피차 잔을 비웠다그래도 그녀는 딸아이와 함께  시간이 좋았다특히 식당에서 마음   딸애의  마음이 그랬던  같았다그리고 취기가  오를 무렵 그녀는 이번 여행이 좋았던  상기된 채로 " 전갑현 진작 이러고  살았냐하면서 나를 그윽히 꼬나보았다나는 순간 깜짝 놀랐다 여인이  앞에 앉아 투정을 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미색이 있는 여인이었다고혹의 여인이었다나는 숨을 몰아 쉬면서 포도주를 마저 마셨다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취기가  몸으로 퍼지면서 혈의 흐름을 재촉하고 들었다고혹의 여인을 보았음인지  힘은  몸의 세포를 자극하고 들었다여자는 달궈지고 있는  남자의 몸을 알아보았다그리고 자리에 들었다남자도 함께 들었다

아침이 왔다우리는 브렉퍼스트  호텔을 나섰다아침 공기는 맑고 신선하였다가벼운 기분으로 우리는 내쳐 달렸다그리고 7시간 정도후 집에 도착하였다.  잔디 위엔 낙엽이 흩날리고 있었다.그러나 집은 무사히  있었고 자동차도 무사히 도착해주었다우리도 물론 무탈하였다.
우리는 감사 기도를 올렸다다음 여행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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